[소·개·합·니·다] 심석태 SBS 디지털부 기자

억울한 이의 곁을 지키는 ´거리의 기자´,

이수형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His view of the law required more soul.”

자신이 몸담았던 워싱턴 최고의 법률회사를 상대로 ‘거리의 정의’로써 대대적인 소송을 벌이는 ‘거리의 변호사’를 존 그리셤은 이렇게 정의했다.(‘The Street Lawyer’ 4장 마지막 부분)

SBS 디지털부 심석태 기자(34). 그가 기사를 보는 관점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 91년 여름 나는 기자가 아니라 사건 당사자로 법정에 갔었다. 조그만 회사의 파업 사건에서 적당히 비겁한 우리를 대신해 구속된 두 선배의 재판을 보기 위해서였다. 심 기자는 그 때 그 법정에 취재를 하러 온 유일한 기자였다.

그로부터 1년 후 법조출입을 시작하면서 만난 심 기자는 언제나 똑같았다. 억울하고 수난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정의가 필요한 현장에는 심 기자가 있었다.

94년 심 기자는 인천의 한 거리에서 40대 중반의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호텔 오락실 전무를 지낸 사람. 심 기자는 그의 탈세수사 문제를 상담해주다가 그의 수첩을 보았다. 경찰과 검찰 세무서 직원들에 대한 상납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심 기자는 최종 선택을 그에게 맡겼다. 그도 구속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락실 전무는 심 기자에게 수첩을 건네줬고 그 보도로 심 기자는 그 해 방송대상을 탔다.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진실을 말하게 하는 힘. 그것이 기자 심석태의 영혼이다. 96년 10월의 ‘분유에서 발암물질 검출’ 특종도 그렇게 이뤄졌다.

죽은 물고기는 물결따라 흘러가지만 산 물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법. 96년 심 기자는 자신이 다녔던 서울대 법대에 비수를 던졌다. 마치 ‘거리의 변호사’처럼. 그는 한 유망한 교수의 하버드대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최초로 표절의혹을 제기했다.

이 보도로 인해 그는 수억원짜리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자신의 정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심 기자의 리포트에는 흥분이 없다. 그는 결코 시청자들을 교육하지 않는다. 그는 시청자 스스로 현실을 관찰하고 진실을 파악하며 판단을 하도록 한다.

심 기자는 지난해 97년부터 2년간 서강대 국제대학원에서 통상법을 전공해 전문기자로서의 소양도 갖췄다.

그의 지적 기반과 원칙 집념 논리를 보면서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심석태가 방송기자가 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가 방송기자가 안됐더라면 더 좋았을것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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