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딸랑' 저널리즘을 배격하자

우리의 주장

지난 19일 저녁 이래 국내 언론은 기사가 아니라 영웅담이나 찬사를 쓰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어느 방송은 개표가(개표 방송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성급하게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방송, 빈축을 샀다.

또 어느 방송은 “당선 직후 이 후보의 일거수 일투족을 추적한다”는 명분으로 엉뚱한 차량의 뒤를 쫓아가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보도했다. 당시의 앵커도 엉뚱한 차량을 뒤쫓아 갔던 것이 밝혀지자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기자들이 먼저 흥분해 성급하거나 과장된 보도를 한 것은 방송쪽만이 아니었다. 신문들도 적정한 한도를 넘은 과잉보도를 했다고 생각된다. 이명박 당선자가 가난을 이겨내고 기업을 일으키고 서울시장이 되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분명 인간승리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명박 당선자의 ‘영웅담’을 쓰거나 그를 위한 ‘찬사’를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 기자들은 담담한 논조로 객관적인 기사를 써야 한다. 그리고 그의 장점과 단점을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이 당선자의 장점이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점도 있을 것이다. 설사 약간을 양보해서 상업적 차원에서 기사를 조금 미화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찬사나 영웅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기사를 파는 사람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언론은 민심의 흐름이 크게 바뀐 것에 대해 “신보수 등장”이라든지 “최대 표차로 승리” 등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지식인이 시청하기에 불안하도록 만드는 성급하거나 흥분된 방송을 하거나, 읽기에 낯 간지러운 미사여구로 신문을 만드는 것은 언론의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아무리 내심 지지하던 후보가 당선됐다고 해도 이처럼 적나라하게 아첨성 기사를 쓴다는 것은 우리 언론인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KBS의 미디어 포커스는 지난 22일 저녁 우리 방송이 대통령 당선자들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미화하는 전통이 전두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보여 주었다. 당선 확정을 전후해 방송시간을 채우기 위해 미리 만들어 둔 다량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할지라도 그 내용을 ‘미화 일변도’의 프로그램으로 만든다는 것은 국민의 수준을 깔보는 짓임을 깨달아야 한다.

어찌해서 언론 자유를 구가하는 새로운 시대에 살면서도 아직도 옛 악습을 벗지 못하는지 참으로 걱정된다. 앞으로 우리 언론은 신문-방송 기자이든 PD이든 인터넷언론인이든 이 같은 “딸랑딸랑” 저널리즘에서 탈피할 것을 촉구한다. 5년 후에는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 언론의 임무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 성장과 자유로운 경쟁 등을 얘기하고 있는 만큼 우리 언론은 이로 인해 어떤 사회적 그늘이 생길지, 그가 추진하는 성장 정책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를 지켜봐야 한다. 우리 언론은 혹시 차기 정부가 성장에 주력하는 나머지 성장의 뒤에서 어떤 소외계층이 생길지 눈을 크게 뜨고 관찰해 보도해야 한다.

정권 인수-인계의 과정은 물론 앞으로 나올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와 함께 어느 정도 해결 국면에 들어간 북한핵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문제가 정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꾸준히 남북한 정부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남북 관계의 발전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남북한 언론인의 활발한 상호교류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형제자매가 흥분하더라도 이것을 말려야 하는 것이 언론인들의 직무다. 언론부터 먼저 흥분할 수는 없다. 우리 언론은 더 이상 “딸랑딸랑” 저널리즘을 행해서는 안 된다. 찬사가 아니라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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