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측 엄포' 역사의 반동 우려된다
MBC향해 "좌시않겠다" 협박성 발언
이명박 후보 떳떳하면 토론회 나서야
요즘 MBC 앞을 지나가면 80년대 시위현장에서 자주 보던 소위 ‘닭장차’를 흔히 보게 된다. 방송국 안에도 전경들이 상주하며 방송국 직원들과 함께 경비를 서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BBK 연루의혹과 관련한 보도가 잇따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명박 후보 지지를 자처하는 집단들이 MBC 보도가 편파적이라며 하루가 멀다하고 시위를 하는 데 따른 것이다. 심지어 한나라당은 무려 “1만명을 동원해 군중집회를 하겠다”, “시청거부 운동을 벌이겠다”며 MBC를 향해 엄포를 놓고 있다.
사실 BBK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는 김경준씨가 본국에 송환되면서 신문과 방송을 가리지 않고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 사건이 이번 대선에서 차지하고 있는 실질적인 위상을 고려할 때 이런 보도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늦었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보도를 엄밀하게 검토해 보면 기존 ‘경마식 보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MBC의 보도 역시 대동소이하다. 김경준씨측의 의혹 폭로와 이에 대한 이명박 후보측의 반박, 김경준씨측의 재반박과 이명박 후보측의 해명번복, 일방적인 공방 중단 선언. 즉 김경준, 이명박 양측의 공방전을 제3자의 입장에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며 그대로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언론들이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 과도한(?) 개입 인상을 남기기 싫어서인지, 과거 국무총리나 장관 등의 인사청문회에서 나타났던 것과 같은 BBK에 대한 심층취재, 검증 작업은 사실상 이뤄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심차게 이번 BBK 공방을 시작했던 이명박 후보측이 객관적 증거에 의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몰렸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명박 후보측이 일방적으로 “사법적 공방 종결”을 선언한 것도 자꾸만 해명을 번복해야 하는 자신들의 궁색한 처지 탓이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일이다. BBK와 관련해 이명박 후보보다 김경준씨측의 주장을 더 믿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편파보도’ 운운하며 언론사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짓은 민주 사회에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행태다.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공방이 치달았다면 그 때도 언론 덕분이라고 말했을 것인가.
이명박 후보측의 이상한 행태는 이 뿐만이 아니다. BBK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이명박 후보 본인이 직접 해명할 수 있도록 토론회라는 공식적인 자리를 여러 차례 마련해 주었다. BBK 사건에 대해 이명박 후보 본인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진정 떳떳하다면 이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해명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이 후보는 자신은 부끄럽지 않다는 말만 구호를 외치듯이 반복하면서 토론회 참여는 거부했다. 토론회 참석 자체가 유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에게 불리한 의제는 외면하고 침묵하면서 그냥 넘어가는 것이 최고라는 속셈이다. 그런데 이런 방침을 거슬러 자꾸 BBK를 들쑤시는 방송이야말로 그에게는 일차적인 걸림돌이 된 것이다. 그 결과 그의 주변에서는 물리적인 방법을 통해 언론사에 대한 압박을 일삼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자신들의 행보에 최대 걸림돌이라고 판단한 MBC를 향해 “좌시하지 않겠다. 집권할 경우 즉각 민영화하겠다”고 서슴없이 협박을 일삼았다고 한다. 또 BBK 보도와 관련해 회사는 물론이고 기자 개인에 대해 대선 이후에도 끝까지 추적해 소송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실정이다. 마치 5공 시절의 보도지침을 연상케 하는 이런 행태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는 언론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겠다는 것 이외에 해석할 방법이 없다.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은 아직도 자신들이 언론을 장악하던 5공 시절의 향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집권하면 다시 5공 시절처럼 언론을 장악하겠다는 뜻인가. 역사의 반동이 지극히 우려된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