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과 한겨레, 경향

더는 침묵할 수 없으니 이제는 물타기다. 스포츠경기 심판 보듯 “누구 말이 맞느냐”고 점잔을 떨다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한쪽 편을 들고, 다른 한쪽에 대고는 욕설을 퍼붓는 격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메가톤급 삼성 비리의혹을 보도하는 우리 언론 태도다. 언론은 애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김 변호사의 1차 폭로가 나오자 못 본 척, 못들은 척 팔짱을 끼었다. 비자금 50억원 조성의혹, 이건희 회장의 검찰·국세청·언론 등 로비 지시의혹,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매각 사건 증인조작 의혹 등 대한민국을 뒤흔들만한 내용이었는데도 말이다. 국민들은 궁금했다. 1면 머리기사에 관련 상자기사를 몇 개씩 내보내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뉴스 앞머리를 줄줄이 장식해도 궁금증이 꼬리를 물 사안이었다. 그러나 기사는 눈씻고 찾아봐도 두 꼭지를 넘지 않았다. 입만 열면 취재선진화방안과 관련해 ‘알 권리’ 운운하던 언론이 삼성 앞에선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지난 5일 김 변호사가 직접 나선 2차 기자회견 뒤엔 보도 태도가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은 스포츠경기 보도였다. 지면을 딱 둘로 쪼개서 한쪽은 김 변호사의 주장을, 다른 한쪽은 삼성의 주장을 실었다. 삼성의 절묘한 물타기 전략에 언론이 장단을 맞춘 꼴이었다. 언론이 그 다음 한 일은 김 변호사에 대한 공격이었다. 체면도 팽개친 채 김 변호사를 ‘또라이’ 취급했다. 중앙일보 11월7일자 <세 군데 직장 옮긴 김용철 변호사 떠날 때마다… “탄압받았다” “아니다” 공방> 기사는 김 변호사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간 대표적인 기사다. 이 기사에서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사안의 본질과도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삼성공화국’의 로비 실체가 드러나는 엄청난 사건이다. 국민들은 진실에 목이 마르다. 구체적인 증언도 나왔고, 증거도 제시했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를 미적댔다. 마땅히 언론의 질타가 따라야 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되레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해야 수사에 나설 수 있다”는 검찰 논리를 두둔했다. 검찰의 주장은 형사사건 제보자에게 용의자 명단을 제출해야 수사할 수 있다는 어이없는 태도다. 그런데 언론은 검찰 주장을 비판하기는커녕 이를 감쌌다. 이번 사건에는 검찰이 직접 연루돼 있다. 따라서 특검이 나서야 진실을 파헤칠 수 있다는 것은 언론이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언론은 특검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시민단체 등에서 특검을 요구하고 있는데도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3차 기자회견 때 마침내 ‘떡값 검사’ 중 고위직 3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말이 ‘떡값’이지 ‘뇌물 검사’와 다를 바 아니다. 이제 약속대로 검찰은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은 이것을 두고 <검찰 흔들기 ‘우려’> 란다. 가만히 있는 검찰을 ‘떡값검사 공개’로 흔들어놓았다는 것이다.

특히 3차 회견 뒤 조·중·동의 보도태도는 상식 이하였다. 경향신문과 한겨레·한국일보 등이 모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고, KBS와 MBC도 9시 뉴스에서 메인뉴스로 내보내는 등 비중있게 다뤘다. 그러나 조·중·동은 약속이라도 한 듯 1면 하단에 배치하고 관련기사를 한 꼭지만 내보냈다. 기자회견 내용과 검찰 주장, 삼성 주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중계방송식 보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다보니 제목 세줄 가운데 해명을 두줄이나 실어주는 상식 이하의 편집을 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광고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협회보> 조사를 보면, 이번 사건을 적극적으로 보도한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11월 들어 삼성 광고가 거의 실리지 않았다. 반대로 이 사건을 소극적으로 보도하거나 김 변호사를 몰아세운 조·중·동과 경제신문은 삼성 광고가 변함없이 실리고 있다. 자본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민 편에서 서서 보도하는 정론지는 언제나 볼 수 있을까. 2007년 가을, 한국 언론의 슬픈 자화상이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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