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린다. 그동안 한미, 한중, 한일간 정상들이 숱하게 머리를 맞댄 것과 비교해 볼 때 아직까지 남북 정상의 만남 자체가 빅 뉴스가 되는 것은 그만큼 분단의 현실을 반증한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두 정상이 만나는 것에 대해 보수신문과 야당은 대선 개입용이라고 헐뜯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일부 보수신문들은 민족적 대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리랑 축전 참관 등 시시콜콜한 의전까지 거론해가며 딴지 걸기에 바빴다. 당연히 진행돼야 할 북측 인프라 투자 등 남북경협 사안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퍼주기로 오도하고 있다.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핵문제보다 남북간 평화체제가 앞서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부분에서는 과연 미국 본토보다 더욱 친미적이다.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어리숙하지는 않다. 호외였던 1차 남북 정상회담 때도 총선 판도에 대한 영향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손님을 맞는 주인격인 북측에서 체제 선전 좀 하면 어떤가. 큰형만한 아량도 없는가. 앞서 베이징 6자회담에서 연내 핵불능화에 대한 합의가 대체로 이뤄진 것은 6자회담과 정상회담이 충분히 선순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설령 6자회담이 부진하더라도 남북간 평화체제 문제는 우리가 당연히 당사자인 만큼, 바람이 없으면 스스로 달리면서 바람을 만들어서라도 바람개비를 돌려야하는 형국이다.
최근 1년 남짓한 개성공단 생활에 대한 체험기를 쓴 토지공사의 한 직원은 국내 언론을 통해서 그릇되게 비쳐진 북측에 대한 고정관념을 직접 그곳에서 살면서 바로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북측의 정보가 그만큼 제대로 전달이 안됐다는 것이고 직접 전달이 안되다보니 그만큼 다른 색칠할 여지가 많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참에 북측 정보 차단을 제거하고 북측 인터넷 사이트를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우리가 먼저 개방함이 바람직하다. 통일의 도상에서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의 구태를 들이댈 정도로 아직까지 자신이 없다면 하다못해 단계적으로 언론사들에라도 먼저 개방해야할 것이다. 아울러 무엇보다 국민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남북 기자들 및 언론사간 교류가 이참에 확고하게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마이클 린드라는 역사가는 최근 미국의 세계전략을 다룬 책에서 남북전쟁 당시를 회고하며 그때 남북 분단이 고착됐더라면 아메리카 합중국의 존재는 고사하고 남북으로 나뉘어 아직도 힘의 균형을 추구하는 외세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그 큰 미국이 그러할진대 작은 우리가 남북 분단 반세기를 겪으며 미국과 구소련을 비롯한 숱한 외세의 대결장이 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것은 미국의 경우와 비교할 때 통합적 리더십의 부재에 따른 역설적 대비가 아닐 수 없다. 동북아 지역 강대국간 파워 외교에서 분단 남북한이 각각 주체적으로 설 자리는 없다.
남북전쟁을 화합의 리더십으로 극복한 링컨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쪼록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궁극적으로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주된 이정표를 다시 한 번 세우길 바란다. 1차 정상회담이 냉전 해체의 물꼬를 틈으로써 상징적 경제협력이 이뤄졌다면 이제 한걸음 더 나가 그 물길의 너비와 깊이를 강화하는 한편 NLL(북방한계선) 문제를 비롯한 정치군사면에서도 대승적 차원에서 화합의 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북측은 1차 정상회담 후 군사도시이자 앞마당인 개성을 내주지 않았는가.
정권 초기든 말기든 남북 정상이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요. 마땅히 경하할 일이다. 이번 바탕위에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독일의 헬무트 콜 수상처럼 주변국가들을 아우르는 외교적 지략을 발휘해 통일의 상생 길로 전진한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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