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기자생활을 했던 한 선배의 이야기다. 경찰서에서 시위 주도 혐의로 구속된 학생과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꼭 기사로 쓰겠다고 약속을 하고 편집국으로 돌아왔지만, 과연 기사가 들어갈 수 있을지는 난감했다.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 결국 ‘명문 대학을 수석 입학했던 학생이 구속됐다’는 이상한 ‘야마’로 3단짜리 기사를 썼다.
하지만 예상대로 편집국에 죽치고 있던 중앙정보부 직원에 의해 기사가 잘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 없었다. 결국 대낮에 소주 2병을 들이키고 와서는 편집국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러 겨우 사회면 1단짜리 기사로 밀어 넣는데 성공했다. 이 선배는 그날 밤 동기들과 밤새 ‘승리의 잔’을 기울였지만 결국 80년 11월 해직되고 말았다.
1990년대 초 기자 생활을 시작한 선배들은 입사와 동시에 주위의 축하를 받았다. ‘언론고시’에 합격했다는 자부심은 물론 ‘경찰서장도 함부로 못하는 파워’,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월급까지. 좀 힘은 들지만 그래도 늘 어깨를 쭉 펴고 다닐 수 있는 든든한 ‘완장’을 얻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IMF를 거쳐 월드컵이 있던 해 입사한 한 후배는 2년 만에 기자 생활을 때려 치웠다. 회사에는 유학을 간다고 둘러댔지만 실은 잘나가는 벤처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매일같이 시간에 쪼들리고 월급도 쥐꼬리 만한데다, 사회적 인식 또한 좋지 않은데 왜 기자 생활을 하냐’는 것이 이 후배의 명쾌한 이직의 변이다.
그렇다. 우리 시대의 기자는 과연 어떤 직업인가?
월급은 이미 다른 직종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밀린 지 한참 오래다. 일은 죽도록 힘들다. 꼭 잊을만하면 한 명씩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다.
사회적 평가는 또 어떤가? 사람들은 ‘기자와 정자는 인간되기 힘들다’며 비아냥거리고, 좀더 근사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 시대 마지막 개혁은 언론 개혁이라며 기자를 몰아붙인다. 1970,80년대 선배처럼 지사(志士)적 자존심도 없고, 1990년대처럼 쥐꼬리만한 권력도 없다. 언젠가부터 편집국, 보도국에 50대 선배들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40대 초반이면 벌써 이직이나 정년을 고민해야 한다. 여느 직장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렇다고 월급이 오른 것도 아니다. 일부 신문사는 보너스를 반납한지 수년째다. 그러다보니 기자에서 기업체 등으로 가는 생계형 이직이 부쩍 늘고 있다. 남은 것이라고는 격무와 박봉만 남았다. 그 모습이 바로 2007년 한국의 기자다.
하지만 왜 우리는 쉽게 기자 생활을 접을 수 없을까? 갈 곳이 없어서? 아니면 언젠가 좋았던 시절도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때문에? 그건 아니다.
‘세상은 변했지만 그래도 어려움을 호소하며 서류뭉치를 들고 편집국을 찾는 취재원들이 있다. 보도를 보고 전화를 해주는 취재원이 있다. 기사 때문에 술 먹고 대들어도 더 열심히 하라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선배도 있다. 큰 권력도 없고 돈도 없지만 그래도 치열한 ‘현장’이 있다. 사회부조리를 파헤쳐 고쳐 나가는 ‘보람’도 있다.’
그래서 2007년 한국의 기자, 좀 힘은 들지만 아직은 괜찮은 직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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