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밤 이후 국내 언론사의 국제부 기자들은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때문에 꽤나 바빴을 것이다. ‘미국에서 지금까지 발생한 캠퍼스 총격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버지니아 공대 난사 사건은 이날 이후 역대 국제부 기자, 사회부 기자, 정치부 기자들까지 지원작업에 끌어들였다. 23일 이후 새로운 주가 시작되자 이번 사건은 국내외 언론에서도 차츰 ‘치유와 안정’의 방향을 잡아가면서 보도량도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보도를 놓고 우리는 향후 유사한 사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보도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에서 받은 초기 인상은 ‘미국에서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캠퍼스 총격 사건’ 보도의 하나(외신 보도의 하나)였다. 작년 8월에도 이 캠퍼스에선 총격 사건이 있었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 규모가 좀 컸기 때문에 국내 언론에는 일차적으로 약간 중요한 외신으로도 취급될 만했다. 하지만 한국 국적의 학생이 총기 난사자임이 드러나자 국내 언론의 보도는 극적으로 변했다. ‘한인 1.5세대’ ‘이민 1.5세대’ 등 표현이 사용되면서 이 기사는 국내 기사로 급전했다. 미국 버니지아주는 물론 미국 전역의 사람들과 외국의 수뇌들이 애도를 표했고, 한국의 수뇌도 애도를 표시했다. 그 정도로 이 사건의 여파는 컸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사건이 비참하고 잔혹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언론에 종사하는 우리는 사건의 성격을 규정짓거나 위로를 전하는 것과는 별개로 보도에는 좀더 조심스럽고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의 보도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국내 언론이 과도하게 미국 언론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언론은 미국 언론의 보도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문제 있는 보도를 여과 없이 받아 전달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해야 한다. 사실 미국 언론은 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 사건이나 르완다의 학살 사건을 그렇게 크고도 열정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국내 언론도 이런 보도에 별로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
주지하다시피 범인 조승희가 미국 NBC방송에 보낸 비디오를 여과 없이 보도한 것도 큰 논란을 낳았다. 이 논란은 미국 내에서 크게 제기됐고, 국내 언론도 이것을 전달했다. 국내 언론에 몸 담고 있는 우리로서도 심리상태가 좀 불안정한 이 청년의 일관성 없는 발언과 욕설, 그리고 그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 국내 수용자에게 그토록 자세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미국의 상업적 언론이 과잉취재와 선정적 보도를 특성으로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더구나 그들의 땅에서 발생한 비극인 만큼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보도하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보도를 받아 전달하는 데에는 적절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
사실 미국의 CNN은 사건 초기부터 “버지니아 공대 학살” 등 매우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학살이란 “많은 희생자들을 내는 야만적인 살육”이라는 의미다. 총기 난사로 인한 충격이 그 정도로 강력했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언론이 이런 정도의 과도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문제가 있다. 국내외 언론들은 왜 이런 사건이 미국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지 문제점을 구조적으로 분석하고, 나아가 해결책이 없는지 찾아 보는 데에 노력을 더 많이 투입했어야 했다. 사실 미국의 수정 헌법 2조가 국민의 총기 소지를 보장하고 있는 만큼 향후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매우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 한국 언론들의 ‘과잉 보도’가 태평양 양쪽에 사는 한국인들의 ‘과잉 대응’을 유발했음을 목격했다. 오죽하면 미국인들마저 ‘한국인의 과도하게 미안한 마음’을 특별히 강조해 보도했겠는가. 이런 배경에서 버지니아 공대의 학보가 ‘치유의 시작’을 호소한 점은 기성 언론의 과잉 보도에 대한 신선한 반작용이었다고 우리는 평가한다. 조승희 사건에 관한 국내외의 보도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언론이 수용자보다 더 놀라고 흥분해선 안 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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