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표절 시비로 이필상 고려대 총장이 현직 사퇴의사를 표명한 가운데 공개된 국내 언론계 내부의 표절 사례는 언론계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에게 자신의 관행화된 그릇된 행위를 되돌아볼 귀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번 표절 파문을 계기로 표절 문제를 깊이 있게 보도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표절의 문제는 우리네 학계에서만 문제되는 게 아니라 우리 언론계 내부에서도 심각하게 다뤄야 할 윤리적 문제다.
신문윤리위원회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지난해 국내 각 언론사에 보낸 ‘표절금지에 대한 주의조치’는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의조치 건수가 최근 5년 사이에 최대 건수를 기록했다. 우리는 위원회의 이번 발표를 보고 국내 언론인의 직업윤리에 매우 심각한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표절이란 남의 창의적인 기사(표현)나 노력이 투입된 정보를 저작자의 허락 없이 훔쳐와 마치 자신이 그 표현(정보)의 창작자(수집자)인 것처럼 수용자를 오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기사를 도둑질하는’ 것을 가리킨다. 표절은 언론인의 도덕성이 파괴되고 언론인의 윤리가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 나오는 것이다. 표절로는 우리가 절대로 좋은 저널리즘을 행할 수 없다.
우리는 그 동안 주변에서 여러 표절 사례들을 보아 왔다. 한 방송이 웹 쓰레기의 문제를 다룬 전문지의 보도 내용을 스스로 취재한 것처럼 거의 그 대로 옮겨 사용한 일도 있었고, 모 방송의 고엽제 피해 보도를 다른 신문이 정보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보도 내용을 거의 그대로 사용한 사례도 있었다. 수년 전 어느 신문의 경우 타 언론사가 게재한 사설의 일부를 그대로 베끼다가 해당 논설위원이 징계를 받은 일도 있다.
일부 방송 기자들의 경우 “재포장도 창작”이라는 생각으로 기존의 독창적 정보와 기사를 재포장하곤 한다. 일부 신문 기자들의 경우도 마치 자신이 취재한 것처럼 기사를 기술적으로 작성하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언론계가 심각한 ‘도덕적 불감증’에 걸린 게 아니라면 이런 행위를 자행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88서울올림픽 당시 도핑테스트 결과를 보도한 한 신문의 기사를 세계 언론이 이 신문을 출처로 밝히면서 기사를 받았던 사례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외신의 경우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이나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이라며 분명히 출처를 밝히고 있다. 이제 우리 국내 언론인들도 다른 국내 보도를 인용할 때 출처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해야 한다.
미국 언론계에서는 2003년 5월 뉴욕 타임스의 ‘제이슨 블레어 스캔들’이 발생했다. 블레어 기자의 표절과 날조 보도로 뉴욕타임스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는 신문과 통신의 기사와 자료를 표절했다가 이것이 드러나 퇴사했다. 1998년 미국의 보스턴 글로브에서는 칼럼니스트 마이크 바니클의 표절 사건이 있었다. 인용한 표현들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표현해 문제가 됐다. 그는 한 간행물에서 특이하고 창작적인 표현을 빌렸지만, 출처를 명기하지 않아 끝내 언론계를 떠나야 했다. 국내 언론계에서는 표절 문제가 크게 불거져 표절자가 언론사를 떠난 전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기사 표절은 언론인의 왜곡된 자만심과 허영심에서 나온다. 표절은 언론인의 양심을 파는 일이며, 그 행위는 언젠가는 드러나게 돼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출처를 밝히고 정보나 표현을 빌려 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떳떳한 행위일지 모른다. 이번 신문윤리위 발표를 계기로 우리는 국내 언론계에 만연된 표절을 근절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표절이 우리의 저널리즘을 혼탁하게 만들도록 방치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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