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을 들 때 북풍한설을 느끼는가

참 많이도 나무랐다. 세밑서 돌아보니 언론의 나뭇가지엔 억센 비판의 흔적들만 연줄 걸리듯 나부끼고 있다. 꼬집고 야단치고 일갈했던 신문 지면들이 쌓이고 쌓여서 어느덧 덧없이 아련하다. 큰소리 쳤던 황우석교수의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는 세간의 언로에 힘입어 국운을 상승시키는 애드벌룬으로 출현했다가 허위의 진실이 밝혀지자 한순간에 추락하였다. 3·1절에 골프 친 총리는 메이저 신문의 파상공격에 보름을 버티다 두 손 들고 말았다. 언론은 같이 골프 친 기업인들의 회사까지 뒤졌다. 관련기업의 주식매매 현황을 특집 다루듯 파헤쳤다. 의혹의 릴레이를 펼쳤지만 특이사항은 나오지 않았다. 총리가 사퇴하니 다들 조용해졌다. 그저 허망한 ‘기세싸움’이었다. 리더십이 모자란 정권은 비판언론에게 맞아도 맞아도 끝이 없었던 한 해였다.

5·31 지방선거를 통해 민심은 집권당을 철저히 심판했다. 무력한 여당은 허수아비처럼 서있기만 했다. 전효숙 헌재소장 임명건으로 대통령의 인사권은 휘청거렸다. 결국 최고 인사권자가 물을 먹는 형국이 되었다. 사행성 성인게임 ‘바다이야기 게이트’는 권력의 자금줄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번지다가 업자의 단순 로비파문으로 그쳤다. 일부 신문의 집요한 풀무질은 별 성과가 없었다.

흔히들 한국사회의 집단적 스트레스의 농후함을 거론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사회는 과도한 경쟁주의와 배려 없는 독단주의로 상호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타인을 설득하고 자신의 주의주장을 차분히 설파하는 대화는 늘 막혀있다. 보수와 진보는 한미FTA, 전시작전권, 북한의 핵실험을 놓고 국론이 두 동강나듯 대립하고 대치한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재팽창에 발맞추어 보수주의 진영의 기세는 하늘을 찌른다. ‘못난 정권’ 탓하며 나라의 틀이 무너질 듯 비관과 비판을 토해낸 절망의 담론에 기겁했던 한 해였다. 실사구시의 찬찬함으로 제대로 된 공론의 장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2006년은 저물고 있다.

한국의 주류 담론이 정치적 공격성으로 기울어져 있을 때 마땅히 보듬어야 할 소외지대는 방치되었다. 경제는 ‘강남 아파트값 폭등’ 의제에만 매달려 서민의 삶은 종속변수가 되고 말았다. 시장은 시장대로 활력을 확보해야 하지만 복지는 복지대로 소외계층을 감싸야 한다. 한겨울이 춥기만 한 영세민 대상 복지의 확대를 정권차원 포퓰리즘이라 매도하는 행태는 그만 둘 때도 되었다.

주류의 목소리는 항상 매스컴을 통해 쟁쟁하게 실리지만 비주류는 왜소하게 구석지로 물러나 있다. 진정한 말의 길과 글의 방향은 저소득층, 서민 등을 껴안고 소외를 해갈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저널리스트 문제의식의 초심이 바로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였다. 세밑 의례적인 이웃돕기운동 차원을 벗어나서 말이다.

미래 비전을 거론하면서 통합의 절실함도 동여매자. 경쟁력의 강화가 우리의 물질내용을 살찌운다면 제도적 불평등의 감소야말로 정신력의 결을 벼리는 일이다. 끝없는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번영만이 시대담론의 주류일 수는 없다. 정신적 빈곤과 사회적 허기는 여전한데 무엇이 시대의 진정성이란 말인가. 문화적 생명력은 스멀스멀 소진되는데 자본의 시장논리만이 시작과 끝을 차지해서는 위험천만하다. 다시 공론장의 건설이다. 자신보다 타인을 나무라는 파열음을 줄여보자. 미진한 것은 격려하고 움직이는 것은 북돋워주자. 무너져가는 한국사회의 컨센서스를 다시 씨줄과 날줄로 엮는 것은 오롯이 언론의 몫이다. 우리 사회의 합의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는 화합의 필력을 기대한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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