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금강산은 북핵 파문속에서도 단풍이 울긋불긋 절정이라고 한다. 바로 이 금강산에서 다음달 중순 남북 언론인들이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한다. 한반도에 드리워진 불안정한 북핵 실험 정국에서 2백여명의 남북한 기자들이 한자리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마치 요즘 계절의 변화에 따른 아침저녁의 한기에 몸을 움츠리다가 밝은 가을 햇살 속의 색동옷 같은 단풍을 보는 듯한 기대감을 갖는다. 토론의 주제는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과 남북언론인의 역할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무엇인가. 그 제1항은 바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이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핵 실험 후 경제·외교적 대북제재를 결의하고 향후 얼마든지 군사충돌로 치달을 수 있는 해상검문까지 촉구한 마당이다. 우리 정부는 안보리 결의를 지지하고 수동적이나마 제재에 동참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6·15 공동선언의 근간인 포용정책의 입지가 확연히 줄었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남북언론인통일토론회는 남북 당국간 대화가 교착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돼야 할 인도적 지원마저 유보된 마당에 민간인 신분인 기자들간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6·15의 정신을 다시 상기시킨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물론 서로 체제가 다른 언론인들이 한차례 모임을 가진다고 난국이 바로 타개되지는 않을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언론인들은 국민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만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부응해 나서야할 나름의 역사적 소명이 있다. ‘6·15’를 지켜야 다시 6·25가 없다.
다시 6·15 공동선언 제4항을 보자.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이 항에 근거해 지금까지 금강산 관광이니, 개성공단이니 하는 남북경협 사업이 이뤄져왔고 남북 각 분야가 활발히 접촉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 ‘언론’이 빠져있음을 보게 된다. 실제로 언론간 접촉은 남북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그간 소원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남북 언론인사이의 접촉과 협력을 적극 추진키로한 것은 잘된 일이다. 이전에 남북정상이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만나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킨 만큼 이제는 이른바 ‘무관의 제왕’들인 기자들이 6·15공동선언에서 명시적으로 빠진 부분을 채워 넣고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한다. 그래야 장차 아빠 엄마로서 ‘우여곡절 많은 평화 통일과정에서 강 건너 불 보듯 보도만 한 채 손놓고 있던 샐러리맨은 아니었노라’고 우리 자녀들에게 한 줄이나마 말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지금 북핵위기는 북한 자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분단 50년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남북간의 적대감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다. 아무쪼록 남북의 기자들이 나서 우선 최소한이나마 공감대를 마련하면서 이 국제적 적개심의 핵뇌관을 해체하는데 앞장서야 한다. 흔들리는 분단체제가 다시 공고해지고 있다. 바람개비를 돌릴 때 바람이 없으면 스스로 바람이 돼서 가야한다. 이번 만남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폭력과 대결이 난무하는 원시바다의 혼돈으로 빠지지 않도록 쉴 새 없이 ‘평화의 바람’을 모아, 물이 갈라지고 뭍이 드러나도록 바람을 불어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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