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이야기' 본질을 파헤쳐라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의 경질이 정치 쟁점이 됐다. 차관 인사는 지면에서 짧게 취급되던 관행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인사 청탁이냐 협의냐 논란이 일었다. 괘씸죄, 그리고 “배 째 드리죠”라는 묘한 언사가 파문에 불을 당겼다. 발언의 진원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유 전 차관은 “언론에 말려들었다”는 말을 남기고 연락을 끊었다. 정무직에 대해서 임명도 아닌 경질 배경까지 설명하라는 것은 지나친 것 요구라는 반론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차관 경질 파문이 가닥을 잡기도 전에 <바다이야기> 의혹이 새로 불거졌다. 유 전 차관이 허가를 반대했다는 바로 그 사행성 게임이다. 의혹이 긴가민가할 때 노무현 대통령은 “내 집권기에 발생한 것은 성인오락실과 상품권 문제”라고 친절히 고백했다. 대통령의 친조카가 관련 업체의 이사로 근무했다는 보도로 의혹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돈, 권력, 인허가.구린내가 날만한 요소를 다 갖췄기 때문이다. 여기다 여의도 정가에서 그동안 묵혀 왔던 성인오락실 관련 설들이 보태지면서 <바다이야기>는 <게이트>로 명명될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풀어야 할 의혹의 핵심은 이렇다. <바다이야기>가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어떻게 통과했고, 상품권 고시 개정과 경품용 상품권 자유화로 30조원 가까운 엄청난 돈이 오가는 도박판이 된 배경은 뭔가에 있다. 청와대가 정책 실패를 인정했다 정리될 문제가 아니다.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만들었고, 감사원은 집중 감사에 들어갔다. 뒤늦었지만 사정당국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언론도 이번 파문을 연일 집중 보도하면서 바야흐로 기사 전쟁에 돌입했다. 사설을 통해 사정당국은 의혹을 철저히 파헤치라고 강도 높게 주문하고 있다. 성역을 두지 않고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하겠다는 자세와 요구는 언론의 당연한 의무이자 정당한 권리이다.



하지만, 언론은 <바다이야기>의혹을 다루기에 앞서 스스로 반성해 봐야 할 점이 있다. 언론의 대표적인 기능중 하나인 환경감시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는지 여부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바다이야기>가 동네 골목을 파고들어 서민들 주머니를 털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도박공화국>이 됐다고 통탄한다. 정부 탓만 하면 그만인 일은 아니다. <바다이야기>때문에 멀쩡한 직장인이 대박을 꿈꾸다 노숙자로 전락하고, 자살로 내몰리는 동안 사행성 게임의 범람을 우려하며 인허가 과정의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온 언론사가 과연 몇이나 있었느냐는 것이다. 자기 집 골목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바다이야기>를 보면서, 길을 가다 마주치는 성인오락실을 보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따져보지 않은 직무태만을 반성해야 한다. 정치권에 떠돌았던 숱한 루머는 왜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는지 자성해야 한다.



또한 언론은 <바다이야기> 의혹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팩트 취재라는 기본 임무를 한시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위 <아니면 말고>식의 기사가 나와서는 안 된다. <바다이야기>는 이제 막 퍼즐 맞추기에 들어간 사건이다. 참여정부 최대의 권력형 비리라는 말까지 도는 마당에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고 엉뚱한 퍼즐이라도 그럴듯하면 일단 기사화하고 보자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몇몇 언론은 벌써 의혹 부풀리기에 나서는 조짐을 보인다. 언론이 이번에도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단지 의혹의 전파자 노릇에 그친다면, 언론의 신뢰도는 또다시 추락할 수밖에 없다.



언론은 권력 개입설을 포함한 모든 의혹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그렇다고 권력 흠집 내기에만 집착하는 것도 정도는 아니다. 임기를 1년 반이나 남겨놓고 관리만 할 생각인 힘 빠진 정권을 비틀어봐야 무엇할 것인가. 그럴 여력이 있으면 차라리 이번 파문의 근본 원인이 된 도박산업 정책의 문제점을 짚어내고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권력은 짧고 도박은 길기 때문이다. 특히 <바다이야기>가 해일로 돌변해 주택가를 휩쓸 때까지 제대로 경고음을 내지 못한 언론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반성문을 쓸 좋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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