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가 협회 창립 42돌을 기념해 실시한 설문조사결과를 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이 시대를 사는 기자의 우울한 초상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우물에 훤히 비치는 기자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고 환한 앞날을 그려볼 수는 정녕 없는 것일까.
급속히 변하는 언론동네의 주변 풍경을 탓하기에 앞서 기자 개인이 자신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볼 일이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 온 기자일수록 까마득히 멀어져버린 초심(初心)의 하늘, 그 푸르렀던 꿈을 찬찬히 되새겨 볼 일이다.
이번 설문 결과에서 소중히 껴안고 싶은 것은 기자직에 만족하는 비율이 79.4%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는 취재, 보도, 제작의 현장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여론조사의 대답 항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자들의 한숨소리는 직업 만족도 설문 결과에 대한 만족감을 일시에 무너트린다. 기자의 64.7%가 과중한 업무 때문에 과로사할 걱정을 한다고 답했으며, 61.7%는 이직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기자직을 몇 살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0세 이상이라고 답한 기자들은 29.3%에 불과했다.
무엇이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는 기자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기자들은 왜 언론동네에서 쓰러지거나 ?겨나기 전에 내가 먼저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질문은 우문이다. 대답은 뻔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언론 환경의 급변, 이 세목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쓸 데 없는 일이다. 엄청난 노동량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온갖 단체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하는 상황을 떠드는 것은 입이 아플 뿐이다. 이른바 참여정부를 표방한 정치권력이 언론보도를 대하는 소승적 태도를 비난하는 것도 그들이 귀를 기울일 의향이 없으니 공염불이다.
다만 혹독한 환경변화에 대응해야 할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가짐을 추스리는 일 만큼은 귀에 솔도록 되새겨야 할 일이다. 기자라는 직업을 처음 선택했을 때 나의 심신은 얼마나 푸르렀던가. 돈과 권력에 무릎 꿇고 살 것이었으면 애초에 이 직업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돌아보면 언론동네의 현실에 대한 각성이 절로 찾아온다. 언론사가 파당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사병 역할을 하는 이를 어찌 기자라고 할 수 있는가. 대기업 자본에 붙어 서민의 고통을 가리는 최면제 논리를 생산하는 이를 어찌 언론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과거보다 현저하게 줄어든 자신의 밥그릇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으면서 진실에 눈감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면….
이번 조사결과에서 우리 스스로 눈을 크게 떠야 할 대목이 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 비율에서 31.7%를 차지한 한 거대 신문사에 대한 신뢰도가 4.0%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 독과점을 통한 지배력 강화에 기자들이 지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게 선이며, 큰 것이 반드시 이긴다는 시대의 논리에 대한 저항의지를 뚜렷이 볼 수 있다. 이런 저항의지가 자신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 어둡고 칙칙한 오욕들을 씻어낼 때 기자사회의 미래에 환한 하늘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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