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가 잘 나가던 시절 언론사 입사 시험 경쟁률은 특이하게도 수백대일이 넘는 게 보통이어서 ‘언론고시’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였다. 과거엔 그처럼 기자가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많은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기자들이 감시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던 기업과 정부부처로 일자리를 옮겨 제2의 삶을 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8월 한국기자협회 창립 41주년을 맞아 현직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직을 고려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한 응답이 53.3%로 절반을 넘는 기자들이 고용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협회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4년부터 올해 5월초 현재까지 기업으로 옮긴 기자는 11개 언론사에서 26명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으로 옮긴 기자들은 이직 이유로 경제적인 문제, 열악한 언론사 근무환경, 기자라는 직업의 비전의 불확실성, 자기 전문성 확보 등을 열거한다. 이것은 한 가정을 부양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는 현실이 기자들에게도 가장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업체들도 유능하다고 판단되는 기자들은 적극적으로 스카우트를 시도한다. 기자들에게는 대체로 기업체 일반 직원들보다 첫째 언론사와의 의사소통에 유리하며, 둘째 잘 훈련되고 몸에 밴 정보수집 노력으로 사회 현안을 포착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셋째 개인적이기보다는 업무 지향적이고 복잡한 사안을 잘 요약 정리하여 일처리가 빠르며, 넷째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지고 인맥이 폭넓은 장점이 있다고 기업체 임원들은 평가한다. 이런 까닭에 기자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체 부서도 홍보분야에만 국한 되지 않고 있다. 경쟁력을 고려해 홍보분야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전직 기자들은 임원 또는 기획, 마케팅, 투자부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다.
기자들의 기업체 이직 현상을 두고 국민의 알 권리와 사회 감시 기능을 담당하던 기자들이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던 기업으로 옮김으로써 언론의 역할이 무디어 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비판이 일부에서 제기되기도 한다. 기업이 비리나 잘못을 감추거나 축소 보도를 위해 전직한 기자를 대 언론 로비창구로 동원하는 것을 경계하는 지적이다.
기자가 현직을 떠나 새 출발을 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떠나는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일자리에 잘 적응해서 이직하는 본인에게도 또 그를 받아들인 기업에게도 잘한 선택이 되도록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이직하는 기자들도 옮긴 기업체에서 제2의 인생을 꽃피우는 모범적인 사례가 있는가 하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기자로 복귀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좋게 해석하면 천생이 기자라고 볼 수 있으나 준비가 철저하지 못하거나 충분히 이직을 고민하지 않고 훌쩍 떠났다 다시 돌아온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전직 기자들은 먼저 자신의 성향을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하라고 충고한다.
언론사가 기자의 50~60대까지 정년을 보장해주는 게 기자의 원하지 않는 이직을 막는 가장 바람직스러운 것이겠으나, 노동시장이 훨씬 유연해진 탓에 인력의 수요 공급의 측면에서도, 생활인으로서의 고충과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새출발을 모색하는 방안의 하나로 기자들의 기업체 이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다.
기업체로 이직해 성공하려면 오랜 기간 준비하여 전문성을 겸비하고 현직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충분한 고뇌와 고민 끝에 새로운 일에 진취적으로 도전하는 자세여야 한다. 새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서 동료, 후배의 견제를 뚫고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직하는 선후배 동료들이 기자로서 성공한 것 못지않게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과 경험을 발판 삼아 제2의 인생에서도 성공하여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해주길 바란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