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탄압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언론의 사전적 뜻은 ‘말이나 글로 자기의 사상을 발표하는 일’이다. 또 언론인의 사명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사실 그대로 국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해방 이후 우리 언론은 눈이 있어도 못 본척 했고, 귀가 있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었고, 손이 있어도 쓰지 못했다. 두말 할 것 없이 언론에 대한 정권의 집요한 탄압 때문이다.



언론은 본디 저항적이다. 더욱이 우리 언론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비판적인 속성과 내성이 강해졌다. 해방 이후 언론은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을 비판했고, 권력은 언론을 탄압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5·16 쿠데타 세력은 언론규제법을 만들어 언론·출판·보도의 사전 검열을 명문화했다. 12·12 쿠데타 세력 역시 언론기본법과 ‘보도지침’으로 언론인들에게 악명을 떨쳤다.



희생은 컸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은 박정희 정권과 결탁한 사측에 의해 1백68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또 전두환 정권의 서슬퍼런 칼날에 무려 7백17명이 강제해직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어디 이뿐인가.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여긴 군사정권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언론인들이 희생됐다. 과거 동양통신 기자들은 군기를 누설했다는 이유로 무려 51명이 소환된 일도 있었다. 심지어 국회나 기자회견장 등 공개석상에서 발언한 사실을 기사화해도 당국의 눈에 거슬리면 가차없이 환문을 당했다.



유신 정권은 반공법 뿐만 아니라 선거법, 군사기밀보호법,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 갖가지 법을 동원해 언론인을 옭아맸다. 나아가 법의 잣대도 없이 임의동행 형식으로 언론인을 불법연행해 고문 등 인권유린을 자행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기사와 관계없이 폭행과 테러, 협박을 당한 일도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임신중인 기자의 아내를 폭행해 유산시키고, 담뱃불로 기자의 얼굴을 지진 만행까지 벌어졌다.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언론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뻔한 의도였다.



폭력으로 권력을 강탈한 5공화국 정권 역시 언론인에게 법보다는 폭력을 앞세웠다. 80년 5월 사북사태를 취재하던 중앙일간지 기자 폭행사건, 정권에 비판적인 편집 간부에 대한 보안사 테러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6·29 선언으로 정권을 잡은 6공화국 정권은 ‘언론 자율’을 내걸었지만 5공 때보다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때로는 강압적으로, 때로는 고소·고발을 통해 능수능란하게 언론을 괴롭혔다.



하지만 우리의 선배 언론인들은 그때마다 처절하게 저항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자유언론실천 선언문’을 통해 △기관원 출입 거부 △언론인 불법연행 거부 등을 결의했다. 이런 선언은 동아일보를 시작으로,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로 불붙으며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져갔다. 이성을 잃은 정권과 사측이 쇠파이프와 각목, 산소용접기까지 동원해 기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도 ‘언론자유수호’ 정신만큼은 앗아가지 못했다.



이처럼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는 수많은 언론 탄압으로 점철돼 왔다. 그런데 과연 이 많은 언론탄압 사례 가운데 진상이 명쾌하게 밝혀지고 명예가 제대로 회복된 사안이 얼마나 될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다수의 사건이 진상규명도, 명예회복도 지지부진한 채 해당 언론인과 그 가족들은 악몽과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직장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린 언론인, 아직도 고문 후유증에 신음하는 언론인, 평생 맺힌 한을 풀지 못한 채 이미 고인이 된 언론인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런 언론인들을 위해 여야 국회의원 17명이 지난 2004년 11월 ‘해방이후 언론탄압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및 배상에 관한 특별법’(언론특별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1년 6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직까지 정식 안건으로조차 상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답답한 시기에 한국기자협회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기로 한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잘 판단한 일이다. 역사적으로도 기자협회는 1964년 창립 이후 군사정권이 언론인을 탄압할 때마다 맨 앞에서 온몸으로 저항해 왔다. 이 때문에 때로는 기자협회 사무실이 권력에 찬탈당하기도 했고, 간부들이 정든 협회를 강제로 떠나는 일도 있었다.



기자협회의 서명운동은 특별법을 발의한 17명의 국회의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국회는 이런 현역 언론인들의 의지를 모아 언론특별법이 빨리 긴 잠에서 깨어나 빛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길 간곡히 당부한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