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는 소송 대응체계 갖추라

기자들은 칼날 위에서 춤추는 광대와 같다. 일선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우리 기자들은 권력에 휘둘리기도 하고 부지불식간 자본의 압박을 받으며 활동을 한다. 압박의 정도가 지나칠 경우엔 진실을 캐고 이를 보도해야 하는 언론의 기본업무까지 흔들리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특히 사방군데서 터져 나올 수 있는 소송가능성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기자생활을 더욱 짓누르는 게 우리 현실이다.



실제로 언론을 상대로 정부기관을 비롯해 기업, 각종 이익단체와 연예인 등 개인차원의 소송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신문과 방송사간, 기존 신문사와 인터넷 매체간 소송도 더러 눈에 띤다. 소송이 이렇게 잦아지고 있는 것은 정보가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소송에 대해 언론사들의 대응체계는 유아적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언론사들에서 법률자문단을 구성,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언론사들은 소송대응체계를 거의 갖추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기사를 쓰는 기자의 기본 자질과 이를 스크린하는 데스크의 역량에 맡길 뿐이다. 그러다 보니 기자와 데스크는 소송이 걸릴 것 같은 이슈나 현안이면 아예 다루지 않고 피하는 경향이 다반사다. 언론으로서 제대로 짚어주고 넘어가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소송가능성 때문에 언론본연의 임무를 기피하는 경우들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국내 증권시장의 40%대를 장악하고 있는 외국계 자본의 소송가능성에 대해서는 국내 어느 언론사이건 제대로 된 대응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 방송사의 PD는 외환위기의 단초가 됐던 국내 기업들의 태국 바트화 채권매입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5개국을 직접 취재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PD는 관련자들의 인터뷰와 함께 각종 자료와 증거물들을 모았다. 방송일은 다가왔다. 하지만 해당 외국계 투자자본은 본사 차원에서 대응에 나섰다.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을 서울에 집중시켰다. 반대주장을 펴면서 방송된 내용의 법 위반 여부를 따져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담당 PD는 법규에 강한 거대 외국자본이 막대한 자금을 동원, 소송을 오랫 동안 끌면서 진을 빼버릴 수 있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 프로그램은 치열한 법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를 약화시킨 채 방영했다.



이 같은 우리언론의 열악한 소송대책은 기자들에게 더욱 무거운 부담을 갖게 한다. 기사와 관련된 소송이 터지면 결국 기사를 쓴 그 기자에게 소송과 관련된 온갖 일들을 해야 한다. 기자 스스로 변호사를 구하고 조서를 꾸미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한다. 법정에도 나가야 한다. 만약 소송에서 지게 되는 경우에는 그 피해보상과 소송비용까지 물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매일 법률저촉여부도 제대로 따져 보지 못한 채 데드라인과 싸워야 하는 기자들에게 이런 일들은 갈수록 늘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자들이 이런 소송으로부터 피해를 줄이려면 일단 스스로 신중해야 하고 항상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데스크들도 법 전문지식을 길러야 한다. 무엇보다도 언론사들이 해야 할 일은 막중하다.



언론사들은 차제에 소송에 대한 자사의 대응체계를 점검해봐야 한다. 법률상담변호사를 위촉하긴 했지만 허울 뿐은 아닌지 챙겨볼 일이다. 기사를 만드는 과정에서 언제든지 편하게 자문을 받기 어려운 대응체계라면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진행되고 있는 소송 건에 대해 언론사 차원에서 책임을 지고 지원을 해줄 만한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기자 개인적인 일로 돌리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언론사들은 소속 기자들이 진실을 자유롭게 찾아내고 취재 보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한국기자협회 차원에서도 법률자문과 소송에 대한 대책을 마련, 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활동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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