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간 한국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던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가 총리의 사퇴국면으로 정리되고 있다. 아프리카 순방을 마친 노무현대통령의 최종 결정방식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총리 골프 이슈는 최대 야당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을 가볍게 눌러 버렸다. 국무총리의 시기 부적절한 파트너와의 골프라운딩 이슈화 과정을 주도한 메이저 신문들이 일주일새 벌어진 두 사건을 편집보도하는 태도는 확연하게 달랐다.
이에 본 란은 현격하게 편향된 보도 행태의 기저를 주목하고자 한다. 한국 언론에 광범위하게 온존하는 '이중잣대 저널리즘'이 이번에도 고질처럼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열흘간 우리 사회 뉴스담론을 주도하는 메이저신문들의 '3.1절 골프' 보도편집행태는 저돌적이었다. 먹이감을 발견한 독수리같이 날카로운 공세였다. 총체적 사회환경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하는 언론으로서 타당한 권리를 펼쳤다.
이 과정서 이 총리의 "부주의한 처신"이 드러났고 불법 대선자금, 주가조작, 가격담합 혐의로 조사를 받았거나 수사가 예정되어 있는 향토 기업인들과 초대 골프를 친 것으로 확인되었다. 몇몇 신문은 더 나아가 관련 기업인의 회사 재정구조까지 쌍심지를 켜고 분석했다. 몇가지 팩트를 발판으로 정경유착의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 상황을 이어 받은 한나라당은 국정조사와 특검을 추진하고 검찰에 고발까지 하였다.
언론이 사건 현안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팩트 파인딩(fact finding)과 객관주의에 입각해야 한다. 부적절한 골프라운딩이 골프로비 사건인냥 비춰지고 정경유착 스캔들로 인화되어 바야흐로 최고 권력층이 연루된 골프게이트로 번져가는 가설을 설정하는 듯한 의혹만들기 보도는 저널리즘의 본류와 거리가 멀다.
객관적 의혹을 파헤치는 것과 의혹을 설정해놓고 그 의혹으로 또다른 의혹을 부풀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각에서 ~추측이 나온다' '~의혹이 대두된다'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기사는 공정보도의 본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 거꾸러뜨리기를 시도할 때 상습적으로 행해지는 한국 신문만의 문체이다.
추후 사법기관이 밝혀낼 실체적 진실을 기준으로 무책임한 의혹제기로 판명되면 해당 언론은 그 때 표현의 자유행사라는 형식논리 뒤로만 숨을 것인가.
1999년 김대중정부시절 메이저 신문이 앞장서고 한나라당이 장단을 맞춘 옷로비사건은 헌정 사상 최초로 특검까지 도입하는 난리를 피우고도 결국 관련 인사 김태정 박주선씨는 무죄판결을 받았고 사법부는 '실체없는 해프닝'으로 마무리했다.
2004년 노대통령 사돈 민경찬씨의 수백억대 펀드사건은 최고 권부의 연루설로 온 나라를 뒤흔들었지만 민씨의 근거없는 허풍이 만든 단순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그 때 흥에 겨운 듯 앞장서 의제설정에 주력했던 일부 언론은 '아니면 말고'라는 관행적 냄비근성을 보여주었다.
이총리의 '3.1절 골프'이슈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노무현정권과 메이저신문간의 파워게임이 그 본질이다. 차기 정권구축을 향한 현존 권력 상처내기가 키워드이다. 국민적 의혹과 국민정서법의 논리를 앞세운 메이저 신문들의 보도자세에서 진실탐구의 저널리즘보다는 움츠려든 정권을 그나마 '무장해제' 시키려는 또다른 '권력의지'가 느껴진다.
팩트가 부족하니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의혹제기성 대형 헤드라인을 앞세운다. 의문제기성 박스기사들로 신문뭉치 전반부를 도배한 의도적 틀짓기(framing)가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몇몇 언론사들과 상견례라는 명목으로 질펀한 술자리를 벌이는 것이 관행인가 보다. 술값은 한나라당이 냈다. 옮겨진 노래방 자리에서 서로 어울려 노래를 불렀다. 나라 전체가 어린이 성추행 살인사건으로 치를 떨 시기에 벌어진 야당과 언론과의 술자리에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여기자를 성추행했다.
이후 가해자 최연희의원은 탈당을 선언하고 잠적했다. 그의 모르쇠 작전에 한나라당 박근혜대표는 "의원직 사퇴는 당사자가 판단할 일"이라며 발을 빼고 있다. 부적절한 시기 공직자 골프는 현행 범죄는 아니다. 그러나 성추행은 범죄로 입건이 가능하다. 3월 4일이후 메이저 신문의 지면에서 최연희 성추행 아젠다는 사라져갔다.
피해 입은 기자의 소속사의 지면마저 그랬다. 결코 총리의 골프 아젠다에 뒤지지 않는 최연희 성추행 아젠다는 어디로 실종되고 있는가. 언론사가 작심하면 어딘가로 잠적했다는 최의원 한 사람 찾지 못할까. 입체 취재와 특별취재팀은 어디있는가.
한국은 언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사회다. 국민의 알권리를 성배처럼 떠받든다는 언론들. 깊지 않고 진중치 못한 기사와 논설들은 독기를 내뿜을 지언정 향기를 품지는 못한다. 한국사회에서 개발독재의 권위주의가 사라진지 20년. 성숙한 시민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시민사회 전반에 절차적 합리성, 책임성, 투명성이 천박한 주의주장들을 걸러내고 있다. 이번 '이해찬 게임'의 승리자는 누굴까. 국민정서를 꿈틀거리게 만든 집요한 메이저 저널리즘이 승자일까. 일만 터지면 허술하게 허둥대며 위기관리능력 하나 갖추지 못한 권부가 패자일까.
<기자협회보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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