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가 5월 20일을 ‘기자의 날’로 제정했다. 5·18 광주항쟁 발발 당시 군부 쿠데타 세력의 압력에 맞서 제작거부를 공식 촉구한 일선 기자들의 저항정신을 반영한 취지라고 한다.
‘기자의 날’이 아직 생소하기는 하다. 하긴 지금까지 기자의 날이라고 기념하거나 잠시 쉬면서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생각해본 날이 없었다. 기존 신문의 날이 있기는 했지만 이름부터가 오늘날 엄연히 다른 언론 매체인 방송, 통신, 잡지, 인터넷 등을 아우르지 못했으며 기자 자신의 날이기보다는 발행인 및 편집인이 중심이 된 신문사의 날이었다.
기자의 날 제정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는가. 먼저 ‘기자의 날’다운 날을 세우기 위해 우리는 기자란 과연 누구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성급히 그 해답을 제시하기 전에 우리가 처한 현실과 상황에서 질문을 좀더 구체적으로 재구성해보자.
시장의 경쟁과 효율을 최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가 범람하는 세계화와 양극화 시대에 언론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보다 분단 60년이 훌쩍 지난 한반도에서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기자만이 아닌 ‘찍자’로서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는 등 한층 강화된 노동 업무조건에서 기자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더 이상 과거처럼 우국지사형이나 민주투사로서의 기자가 아니고 인터넷 시대에 누구나 기자를 자처하는 터에 그저 수많은 ‘놈’중의 하나이자 회사의 숱한 부속품 같은 샐러리맨으로 전락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자의 본령은 역시 권력과 자본의 견제이다. 강한 자를 견제하며 약한 자를 도와주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이다. 공평과 정의의 나라, 신적 자비와 친절이 흘러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데 힘쓰는 것이다. 이 같은 대전제에 동의하면 우리의 나아갈 길이 보일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당면한 한 과제로서 세계 무역기구(WTO)의 농업개방 체제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와중에 생존의 고비에서 허덕이는 4백만 농민의 아우성치는 소리에 귀기울이자.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살아있는 날 동안에 불현듯 닥칠지도 모르는 통일에 대비해 깨어있자. 기자로서 할 일 많은 이 땅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고, 정직히 땀 흘리는 근육질의 노동자와 막일꾼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탐사하고 쓰자. 저마다의 분야에서 프로페셔널한 전문성을 가꾸되 시민에 밀착한 저널리스트로서 사회, 국가, 세계 전체적 흐름과 조망을 잃지 말자. 일할 때는 기자다운 매서움과 날카로움이 배어있더라도 한 시민으로서는 이 사람이 기자 맞나 하는 느낌을 줄 정도로 특권을 주장하지 않으며 부드럽고 다정한 평범한 이웃으로 살자. 미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레스턴은 기자가 버스를 타고 다니느냐, 비싼 자가용을 타고 다니느냐에 따라 그 필치도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기자의 날이 아직 제도화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자신이 기자의 날을 만들어가야 한다. 온 국민이 우리 기자의 날을 인정하고 경축하기까지 기자 본연의 임무인 사실의 정확한 보도와 공정한 논평을 고수하자. 또한 기자의 날을 맞아 장준하, 송건호, 리영희 선생같이 사표로 삼을 만한 훌륭한 선배들을 역사와 우리 주변에서 발굴하고 이들을 본받을 때 기자의 날은 해가 다르게 그 뜻을 더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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