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결혼식과 언론보도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던 ‘지하철 결혼식’이 대학생들의 연극으로 밝혀지면서 허탈해하거나 심지어는 분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성금을 모아 신혼여행이라도 보내주자”던 인터넷상의 일부 움직임도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제 한번 되짚어보자. 이번 일이 누구의 책임인가?



비록 연극임을 밝히지 않은 잘못은 있지만, 대학생들이 온 국민을 상대로 가증스런 사기극을 벌인 것인가? 아니면 우연히 그 장면을 보고는 자신도 진짜라고 믿고 감동을 나누기 위해 인터넷에 동영상을 올린 사람이 죄인인가? 그도 아니면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을 최소한의 검증도 하지 않고 온 국민에게 퍼뜨린 언론이 잘못인가?



연극을 한 대학생들과 이를 찍어 인터넷에 올린 사람은 비록 과실은 있을지언정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방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론은 ‘사실 확인’이라는 기본 중의 기본 책임을 소홀히 했다. 당시 이 동영상 소식을 전하면서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제기한 언론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것도 면피를 위한 보험 차원에서 의례적으로 갖다 붙인 경우가 많았다.



어떤 언론인은 말한다. “비롯 거짓이었다 하더라도 덕분에 잠시나마 세상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지 않았냐”고. 이 말이 과연 언론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면하게 해줄 수 있을까? 물론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짓으로 세상을 따듯하게 하는 것은 ‘드라마’일 수밖에 없다. ‘뉴스’와 ‘드라마’는 분명 다른 영역이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인터넷 언론이나 제도권 언론 모두에 대해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인터넷 언론은 달라진 위상에 걸맞게 더 많은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특히 포털은 이제 그 영향력이 결코 제도권 언론에 뒤지지 않는다. 기사를 직접 쓰는 경우는 많지 않아도 누리꾼들의 동영상이나 제도권 언론 보도에 대한 파급효과가 실로 막강하다. 포털이 기사나 시민들의 제보를 비중 있게 화면에 배치할 경우 많은 누리꾼들이 보게 되고 이는 다시 사회적 이슈의 확대를 불러오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네티즌들이 좋아하는 뉴스라도 사전에 사실 확인이나 선정성 여부 등을 점검(게이트키핑)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이번 사건에서 제도권 언론은 인터넷 언론에 의한 희생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널뛰기는 제도권 언론이 오히려 더 심했다. 인터넷 여론을 검증해야 할 책임이 있으면서도 무작정 따라가기와 무책임한 확대 재생산에 열을 올렸다. 특히 지금과 같은 초스피드 시대에 제도권 언론이 인터넷 매체와 자신을 차별화하고 인터넷 매체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철저한 확인을 통해 ‘믿을 수 있는 기사’를 제공하는 길 밖에 없는데도 오히려 인터넷 언론을 상대로 선정성과 속보 경쟁의 이전투구에 앞장서 뛰어들고 있다. 두 해 전 교장의 자살까지 불러온 이른바 ‘왕따 동영상’과 소문이 사실처럼 보도된 ‘연예인 X파일’ 등은 인터넷 언론과 제도권 언론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사태를 악순환 시킨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파문은 공신력을 저버리고 속보경쟁에 뛰어든 제도권 언론의 조급증과 막강한 편집권을 행사하면서도 게이트키핑 기능을 소홀히 하고 있는 포털 등의 무책임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결과는 모든 언론이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앞으로 진짜 눈물나고 감동적인 이야기도 누리꾼들에게는 의심부터 사게 될 수밖에 없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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