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기자는 어디로 가는가

뉴미디어의 격랑이 거세다. 안방극장은 간편한 손안의 극장으로 변하고 뉴스는 천지사방에서 흐르고 있다. 길을 걷다가도 실시간 인터넷으로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점검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디어산업에 원동력을 제공하는 광고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웹 신문의 광고매출이 비온 뒤 대나무 자라듯 크고 있다. 이제 광고주들은 인터넷 수용자를 최적의 타겟으로 삼고 있다. 반면 오프라인 인쇄매체의 광고수입은 감소하고 있다. 하다 못해 지상파TV의 광고매출도 정체 후 줄어들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인터넷신문 광고수입은 2018년이면 오프라인미디어 광고수입을 추월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와 있다.



미디어의 지형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출렁거릴 것이다. 생존과 도태는 급박하게 이뤄질 것이다. 특히 기술정보화 진전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의 미디어산업은 피아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경계를 넘나들 것이다. 방송 신문 통신 휴대전화사업자 유무선 인터넷 영화 등 모든 콘텐츠매체들이 만인대 만인의 적자생존 경쟁을 벌일 것이다.



사회의 주류 미디어가 온라인으로 교체되면 미디어의 종사자의 포지션도 변하게 된다. 특히 사회환경을 감시하고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들의 임무와 권리는 더 깊어지거나 더 특화될 것이다. 재래의 뉴스 채취방식은 지양된다. 뉴스소비자의 새로운 수요와 감성적 취향에 민첩하게 반응해야 한다.



이때 백척간두에 서있는 기자들이 있다. 바로 ‘시니어 기자’들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후 한국경제는 호황에 돌입했다. 광고시장은 풍성했다. 신문 방송시장은 신규 저널리스트들이 필요했다. 기자시험, PD시험은 수백 대의 일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많은 수의 기자들이 언론계로 들어왔다. 이제 그들이 중견으로 성장했다. 빠르면 부장급 데스크가 되었고 각 부서별 수석기자로 또는 팀장급 기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조직의 리더가 될 수는 없다. 화사는 선별하고 차별화하려 한다. 더구나 이들 시니어 기자들의 후배세대는 상대적으로 두텁지 못하다. IMF환란 후폭풍 탓에 10년 차 이하 젊은 후배들은 필요보다 숫자가 적다. 회사는 경영적 판단을 굳이 숨기지 않고 있다.



언론사들은 새해 들어 선임기자제도 도입, 전문기자제 강화, 직능별 에디터제 등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한편으로 경력 기자채용을 상시화하고 있다. 실력 있는 기자라면 어디서든지 데려와 자사의 미디어 콘텐츠를 빛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신문산업 재편의 신호탄은 이미 반짝거렸고 온·오프를 넘나드는 미디어융합은 시작되었다. 미디어별로 디자인이 혁신되고 뉴스의 퀄리티 확보가 급선무로 등장했다.



이제 기자들의 평생 스카웃시대가 열렸다. 나는 스카웃 대상인가. 비용대비 생산성이 낮은 용도폐기 대상인가. 각박함이 하늘을 찌르는 시점이 다가왔다. 현재의 조직이 아니면 생존하지 못하는 시니어 기자는 불행해진다. 그에게 다가오는 것은 그 조직에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만이 횡행할 것이다. 당연하게 자기혁신은 멀어지고 위만 쳐다보는 관료주의적 비굴함만 가득 차게 된다. 중견기자로서 현재 조직의 권위주의 기수주의 공채·비공채 차별주의에 그대로 물들 것인가. 답습은 약한 자의 생존 비법일 뿐이다.



지금 언론조직의 허리를 이루는 시니어 기자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이 나라 이민족의 기본 모순을 고민한 최초의 사회과학적 세대들이다. 지사적 저널리즘의 꿈을 마지막으로 향유한 학번들이다. 자기 개조와 혁신으로 가자. 어차피 멀티 다매체시대는 시니어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재규정하고 있다. 관습화된 역할 모델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평생 자기 개발시대의 첫 주자가 되자. 독특한 자기류로 무장한 미래 미디어의 개척자가 바람직하다. 온통 조직의 수익모델에 불철주야 매달리는 회사기자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모델은 아니다. 나의 앵글, 나의 상상력, 나의 실력이 탄탄하면 나의 콘텐츠는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수요자에게 전광석화의 속도도 퍼진다. 지금 수천만의 수용자는 수많은 뉴스현장을 누빈 시니어 기자들의 ‘경험의 수’를 고대하고 있다. 십 년을 훌쩍 넘고 이십 년을 향해 가는 연륜은 귀하고 ‘거대 비전’의 보고이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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