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회 한국기자상 수상소감/[특별상] AP통신 최상훈
철저히 무시된 피해자 인권 기억해야,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 추적보도
최상훈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AP통신이 노근리학살 주장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98년 4월이었다. 사실 이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국내 일부 언론에 보도되고 피해자 가족들은 수 많은 청원서를 한.미 양국 정부에 보낸 상태였다. 정작 기자의 관심을 끈 것은 사건 당시 미군은 노근리 지역에 없었다는 미군 당국의 답변이었다. 나름대로 관련 자료를 검토한 결과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AP 본사에서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자료 전문기자를 미 국방문서보관소에 보냈다.
미 정부는 '철저하게' 자료를 검토했다고 했지만 AP통신은 불과 며칠만에 '양민사살 명령서'와 노근리 인근에 미군이 주둔했음을 보여주는 문건을 입수했다.
그후 AP통신 노근리 추적보도팀은 수개월 사건 재구성에 몰두했다. 미국에서는 수백 상자의 비밀 해제된 문건을 검토했다. 한국에서는 기존에 알려진 생존자와 새로운 피해자를 추적 탐문했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한.미 양국 정부의 철저한 무관심에 놀랐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50년 전 사건에 대한 그림 맞추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관련부대가 지목되었을 때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그 어느 자료도 노근리 사건을 직접 증언하고 있지 않았다.
취재팀은 정보공개법으로 당시 중대급 상황 보고서와 부대원 명단을 입수했다. 이 중대상황 보고서는 노근리 주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곧이어 미 전국에 걸친 퇴역군인 소재지 파악에 나섰다. 34번째 인터뷰에서 노근리를 기억하는 첫 증언자를 발견했다. 총 24명의 퇴역 미군이 노근리를 증언했다.
검토, 재검토, 또 재검토를 거친 끝에 9월 30일 새벽 AP통신은 1년 6개월에 걸친 탐사 보도결과를 타전했다. 당황한 미 국방성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반응은 너무 컸다. 불과 하루만에 미 국방성은 입장을 번복, 전면적인 수사를 발표했다.
노근리 취재를 위해 수많은 저녁시간을 이메일과 전화통에 매달렸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각자 억울한 6.25 사연을 갖고 찾아온다. 정부 당국자들에게 6.25는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일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나라는 한이 많고 억울한 사람으로 가득하다.
'노근리 인근에는 미군이 없었다'는 불성실한 답변 한 마디. 후일 시카고대학 부르스 커밍스 교수는 이 주장이 거짓임을 밝히는데 단지 5분 걸렸다고 했다. 노근리보도이후 이 사건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의견이 분분하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수많은 애절한 탄원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무시당한 노근리 피해자의 인권이다. 노근리에서 두 아이를 잃은 한 할머니가 있다., AP통신 보도 후 이 할머니는 '이제 한이 풀려, 편안히 눈감을 수 있다'고 했다. 기자는 그 어떤 찬사보다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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