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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지애 CNN 한국지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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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중년 여성들 사이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욘사마 배용준에 관한 기사를 취재 보도한 적이 있다. 비행기를 전세 내고 한국을 찾은 일본 여성들이 남이섬, 춘천 등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를 찾아 가서 욘사마에 대한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다룬 기사였다.
욘사마가 앉았던 벤치에 앉아서 사진 찍는 팬들, 혹은 욘사마가 찾았던 식당을 찾아 식사하는 팬들, 그들의 거의 광적인 욘사마 사랑을 취재하며 한일 관계에도 바야흐로 진정한 선린 우호의 장이 열린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렸었다.
일본에서 욘사마나 보아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고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그대로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바뀌기 때문이었다. 특히 올해는 해방 60주년 수교 40주년을 맞는 한일 우정의 해이기 때문에 그런 희망적인 생각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러나 불과 수 주일이 지나 본인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선포에서 시작된 한일간 외교 분쟁은 주한 일본 대사의 발언 등으로 한일 관계를 악화시켰고 이후 계속적으로 양국의 공격 수위는 높아만 갔다. 독도 문제, 그리고 역사 교과서 문제로 인해 오히려 양국 간의 관계는 최근 들어 가장 악화된 상태로 변해갔다.
기사도 양국간 대중문화 교류 등 부드럽고 긍정적인 기사에서 갑자기 반일 데모와 시위 등 험악하고 부정적인 기사로 바뀌어 갔다. 최근에는 중국과 일본 간 역사 및 영토 논쟁까지 첨가되어 바야흐로 동북아의 주요 기사는 온통 대립과 반목의 기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전세계가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세계화의 와중에서 동북아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데 대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이러한 외교 분쟁의 와중에서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한 국가나 사회 내에서 언론은 여러 가지 갈등을 해소하고 조정하는 바람직한 기능을 수행한다. 간혹 언론이 사회 분열을 조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현상이고 궁극적인 목표는 이러한 갈등을 해소해서 사회 통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국가 대 국가의 경우에 있어 언론은 대개 분열과 대결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동북아 3개국 언론 모두가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고 자국민의 자긍심과 민족주의를 대변하기 때문에 이들 언론 모두는 이러한 외교 분쟁을 해결하기보다는 확산시키는 역할을 주로 한다. 언론이 자신이 속한 사회나 국가체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현상으로 여겨진다.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언론이 자국민의 감정을 자극해서 이러한 외교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우는 너무도 많다. 그러나 국가간 문제에 있어서도 국내 문제와 마찬가지로 언론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감정적인 보도보다는 차분하게 사실에 근거해서 균형 있는 보도를 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국제화 시대의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된다.
국제 매체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본인은 때로는 어렵지만 가능하면 이러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고자 노력한다. 한국인이란 사실 때문에 때로는 한편으로 치우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가능하면 객관적인 제3자의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노력한다. 일본에는 한국 침략의 과거사를 미화하려는 극우 보수파도 있지만 정치와 상관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욘사마를 사랑하는 수많은 한류 팬들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국제 매체든 국내 매체든 균형 있는 시각이 가장 필요한 때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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