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청사진에 '기자'는···

기자복지 외면한 매체혁신은 공허

언론사 경영진 대부분이 신년사를 통해 새 천년은 변화의 시대, 엄청난 매체혁명의 시대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래서 그 어느때보다 도전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칠줄 모르는 도전정신이야말로 이 험난한 변화의 물결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구명대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인식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취재현장을 뛰는 현업종사자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하루하루 기사에 쫓겨 허덕이다 지친 몸으로 밤늦게 가정으로 돌아가는, 인기없는 가장들 아닌가. 그런 언론인들이 변화를 선도하고 바람직한 좌표를 제시하기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가 될 것이다.



이같은 현실에 대해 경영책임자들은 개선대책을 내놓는 데 인색했다. 오히려 IMF체제라는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수많은 언론인을 거리로 내몰았고 터널을 빠져나온 지금도 인원충원없이 다시 증면경쟁에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이는 지난해 유례없는 흑자를 기록한 언론사들이 이익금을 증면경쟁에 쏟아부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증면경쟁은 기자들의 노동강도를 가중시키고 기사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매체의 혁명적 변화를 주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종사자들이다. 종사자들의 복지 향상 없는 매체의 혁명은 공허한 메아리일 수밖에 없다. 그 종사자들을 탈진하게 해놓고 끝없는 경쟁만을 강요한다면 21세기는 꿈의 세기가 아닌 암흑의 세기가 될 것이다.



언론사들마다 1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경을 내비치고 있는 점도 음미해볼 대목이다. 그들이 말하는 1등은, 신문은 최고의 발행부수일 것이며 방송은 시청률 1위일 것이다. 결국 1등의 실체는 숱한 비판을 받아온 양적 팽창이다. 그렇다면 또다시 지칠대로 지친 기자들에게 ‘마른 수건 다시 짜내기’ 식으로 채찍질을 가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몇몇 언론사들이 인재를 꾸준히 키우겠다는 약속도 했지만 전례에 비추어 볼 때 이 역시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구두선에 불과해 보인다. 일반 기업도 자사의 인재를 키우기 위해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가 많을진대 언론사만큼 인재 키우기에 인색한 곳이 있을까 싶다.



사람이 재산인 언론사에서 사람을 키우는데 인색하다면 미래는 밝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언론사의 인재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우선 기사량에 눌려있는기자들을 잠시라도 쉬게 하자. 면수가 늘어나는 만큼 인원을 보강해야 한다. 또 최소한 10%의 인원은 각종 연수나 저술활동을 할 수 있게 인력운영에 융통성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지원사업은 일반 기업에 떠넘기지 말고 당당하게 해당 언론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경영합리화라는 미명아래 사람 수를 줄이고 비용을 마구잡이로 깎는 행태가 남아 있는 한 이런 기본적인 요구는 충족될 수 없다. 화려한 말잔치에 숨어 손쉽게 ‘1등신문’이 되려는 ‘무망’한 기도나 노동의 가치를 현물적인 수치로 기만하려는 무례한 기도가 새 천년에는 없어지기를 기대한다.


편집국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