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저널리즘에 시비를 걸어야 한다

원용진 서강대 신방과 교수




  원용진 교수  
 
  ▲ 원용진 교수  
 
인터넷 포털 서비스에 실리는 기사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종이 신문에 비길 일이 아니다. 온라인 저널리즘이라 일컬어지는 인터넷 신문도 거기엔 미치지 못한다. 특히 포털 서비스의 초기 화면에 뜨는 기사들의 파급력은 상상 이상이다. 저급하거나 함량 미달이라고 미뤄두었던 저널리즘적 눈길을 보내야 할 때가 되었다. 포털 저널리즘으로 명명하고 그것의 영향력, 사회적 책임, 타 저널리즘과의 관계 설정 등을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무임승차격의 몸집 부풀리기를 거듭해온 그에게 더 늦기 전에 시비를 걸어야 한다.



애초 포털 서비스는 기존 언론에 기생하는 듯 보였다. 기사를 실어 나르는 역할에 자신을 한정하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기존 언론의 내용 여부에 따라 클릭 수가 늘어나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는 등 피동적 모습을 보여 왔다. 그래서 포털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을 선사하기엔 낯간지러운 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 관계는 지속되지 않는다. 포털 저널리즘만을 겨냥한 한 없이 가벼운 (정보제공) 저널리즘도 생겨났다. 기존 저널리즘도 포털을 감안한 정보 가공을 꾀하게 되었다. 이른바 주객전도가 벌어지고 있다. 포털이 숙주가 되고 기존 언론이 그에 기생하는 대 역전극이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다.



인터넷은 방송에 버금가는 유통력을 갖게 되었다. 리모컨 스위치 하나로 텔레비전을 접하듯 인터넷도 큰 비용 지불 없이 접근하기 쉬워졌고,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는 막강 유통력의 매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는 아직까지도 포털 서비스업을 정보제공 영역으로 축소시켜 분류하고 있다. 정보를 발굴하여 채집하고, 단순 배열하는 존재로 파악하는데 익숙하다. 막강 유통력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사회적 책임, 통제가 거론되지 않는 것은 그 같이 수동적 존재로 파악하는 인식 탓이다. 내용이 문제가 되면 그 내용을 제공한 측의 문제일 뿐, 포털은 책임을 비켜간다. 스스로를 경제부처라고 규정하면서 공공성 등을 외면하는 정보통신부처럼 포털 서비스도 자신을 정보 비즈니스로 규정짓고, 경제적 시각으로 보아줄 것을 요청하고,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책임을 외면한다.



포털 저널리즘을 먼 산 보듯 할 수 없게 되었다. 포털 저널리즘은 이미 전체 저널리즘의 지형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종이 신문, 온라인 신문, 방송 저널리즘 등에도 언제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제 사회적 통제라는 우산 아래로 들어와야 할 만큼 주요한 사회적 제도의 반열에 올랐다. 저널리즘 상호간의 견제와 비평을 주고받는 저널리즘 문화 안으로 포털 저널리즘을 끌고 들어올 때가 되었다.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희망의 영역도 그늘의 영역도 아니다. 사회적 구성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 잠재태일 수밖에 없다. 인터넷을 자본 재생산의 영역으로 꾸려가기에 자본이 저렇게도 가열 차 있음에도 사회적 공공성의 보루인 저널리즘이 침묵한데서야 인터넷의 장래는 뻔한 일 아닌가. 제대로 구축된 공공성을 지닌 포털 저널리즘은 언젠가는 위기에 빠진 저널리즘에 큰 힘을 전해주는 협력자의 역할을 하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 만날 수밖에 없는 숙명적 파트너의 헛 걸음질, 뒷 걸음질, 옆 걸음질을 외면할 수는 없다. 더 늦기 전에 언론은 포털 저널리즘에 시비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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