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기자는, 그리고 언론은 변화해야 한다

지나간 천년과 다시 시작하는 천년. 이것이 우리 기자들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물론 시간의 흐름을 나눠 반드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야 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시점을 맞아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내일의 다짐을 새롭게 한다는 건 시간이 주는 또다른 배려이기도 할 것이다.



굳이 먼 과거를 반추할 필요 없이 99년 한 해만도 언론계에서는 되짚어 생각하고 다시 추스려야 할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간부에서 평기자에 이르기까지 각종 비리와 그것을 둘러싼 의혹들은 기자윤리의 현 주소와 제고 필요성을 절감케 했고, 한계를 넘어선 기자-취재원의 유착 문제는 언론문건 사건으로 온 국민들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또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시작된 중앙일보 파문은 권력과 언론의 제자리 찾기라는 해묵은 과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현실을 재확인시켰다.



돌이켜 생각하면 지난 세월 우리 언론은 일제와 군사독재의 강압에 맞서 민주언론의 초석을 세우고 언론자유의 기치를 드높인 저항의 역사를 살아왔다. 하지만 그 세월은 또한 권력과 자본에 굴종하고 유착해 새로운 권력으로 '전락한' 역사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사주들은 언론사 안팎에서 가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키워나갔고 사죄도 반성도 모르는 오만한 언론으로 자리잡아갔다.



결국 일은 일대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그 모든 과오와 피해는 기자들이 짊어졌다. 올곧은 비판과 저항의 정신은 퇴색하고 한발 한발 물러선 결과 이제 '기자는 샐러리맨'이라는 자조가 더이상 새롭지 않은 현실이 돼버렸다.



그리고 99년, 그 많은 일들이 터져 버렸다. 20세기 말미에 벌어진 이 같은 일들은 우리 언론계에 부여된 과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음을 새삼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새 천년이 언론에 제기하는 명제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변화라고 단언한다. 확인하고 싶다면 지금까지 벌어진 언론계 안팎의 많은 사건들이 그 절실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밖으로는 권력과 건전한 긴장 관계를 재정립하고, 기사를 광고와 맞바꾸는 작태도, 국민을 여론조작의 대상으로 삼는 오만함도 뜯어고쳐야 할 일이다. 안으로는 구태의연한 취재시스템을 개선하고 경기에 따라 널을 뛰는 물량경쟁도 이제는 정리해야 한다.



아울러 뼈를 깎는 자성과 실천을 통해 땅에 떨어진 언론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안팎의개혁요구가 언론계를 달궜던 99년은 그나마 방송법 통과라는 성과 하나만을 남기고 지나갔을 뿐이다. 정기간행물법 개정을 통한 소유구조 개선, 편집·편성권 독립 확보, 해직언론인 배상특별법 제정, ABC제도 확대·강화, 신문 판매시장 정상화 등 그나마 구체화된 현안들은 모두 해를, 세기를 넘겼다.



누가, 어떻게 이러한 과제들을 풀어나갈 것인가. 우리는 여전히 기자들에게, 기자사회의 복원에 이러한 변화와 개혁의 희망을 걸고자 한다.



물론 일선 현장에서는 이미 기자사회 해체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어느새 선후배, 동료들과 얘기할 기회도 적어지고 과중한 업무량과 회사의 관리시스템에 젖어 주위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하지만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한다. 과거 경험을 통해 확인했듯 안팎의 문제 앞에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할 때 결국 그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기자들이 떠 안아야 할 몫으로 돌아온다. 내부 병폐에 침묵하는 자의 사회 비판은 신뢰할 수 없고 그 반대 역시 공허한 울림 밖에 되지 않는다.



언론의 개혁이든 변화든 그 대의명분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세력과 연대하더라도 그 주체는 기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로운 천년을 맞는 지금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자못 비장하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자'고 말하려 한다. 과거나 전통으로 회귀를 말하려 함이 아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명징한 정신과 명쾌하게 옳고 그름을 가르던 그때로, 취재수첩을 다잡고 떨리던 펜 끝엔 팽팽한 긴장이 묻어나던 그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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