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 2004년 ‘언론 10대 뉴스’. 그 중에서 제 1순위 뉴스를 뽑으라면 ‘종이 신문의 위기’를 톱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으리라. 감원, 파산, 명예퇴직, 이직, 감봉, 폐쇄…. 첫 번째로 손꼽을 만큼의 정황은 무수히 많다. 모두가 어렵게 살아온 한 해였지만 신문 언저리의 사람들은 정말 힘들게 한 해를 지내왔다. 언론계 전반이 내년엔 더 고통을 받을 거라지만 어느 누가 신문만큼이나 찬 바람을 온 몸으로 맞을까 싶다.
누구도 이처럼 눈 깜짝할 새에 신문산업이 한파에 내몰리리라 예측하진 못했다. 인터넷 신문의 약진을 부러운 눈초리로 보면서도 호연지기로 은근히 배포도 부려보았다. 인터넷 신문의 파고에도 불구하고 공존의 시간이 있을 거라며 막연한 낙관을 내놓기도 했었다.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신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온 사회가 예측에 서툴렀다. 학계도 변죽만 울렸을 뿐 이 지경에까지 이르리라고 내다보지 못했다. 경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으니 허둥대는 손짓만 클 뿐이었다.
설상가상이라고나 할까. 종이신문의 우울한 풍경에 불쾌한 조각 풍경 하나가 얹어지고 있다.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자리 논란이다. 이를 놓고 언론계 온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던지길 마다 않는다. 각 신문마다 사설, 칼럼을 통해 시시비비를 따진다. 관련 단체들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누구누구가 짜고 벌인 일이라며 인신공격, 비방으로 얼룩져 있다. 이 것을 두고 불쾌한 조각 풍경이라 부르는 것은 지금 신문이 위기의 와중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신문의 위기는 몇몇 신문사의 위기로만 마감되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신문은 -과거와 현재의 몇 몇 과오에도 불구하고- 놓치지 말아야 할 사회적 공기(公器)다. 무한 경쟁으로 신문시장이 일그러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해서는 안된다. 지금 신문의 위기 와중에 필요한 것은 신문시장의 적절한 규모에 대한 측정, 그 크기 안에서 신문이 다양성의 공존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 신문의 자율을 한 치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할 사회적 지원 등에 대한 고민들이다.
한국언론재단은 위기를 맞은 신문의 앞가림에 도움을 주는 쪽으로 기구 개편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당연히 새로운 조직의 이사장은 위기 해결과 도움 주기, 그리고 새로운 기구에 적절한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신문이 내뱉은 말들은 온통 누가 누구를 밀고, 누가 한편이냐에 쏠려 있다. 신문의 위기와 관련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직도 신문은 ‘언론 10대 뉴스’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더 추워지고, 비참해지지 말고 신문의 미래를 위해서 이 불쾌한 조각 풍경은 말끔히 정리되어야 한다. 편 가르기 의제가 아닌 위기 탈출의 의제로 바꾸고 자신들의 미래를 사회적 의제로 내거는 지혜가 절실히 요청되는 때다. 자리다툼이 아니라 지혜 다툼으로 의제를 전환해야 한다. 탄생 이래 최대의 위기 국면을 맞이했으면서도 제 앞가림을 외면하고 먼 산 보듯 해서야 어찌 세상사를 논하는 자격을 가졌다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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