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주장] 추태는 올해로 끝내자

부끄러운 언론-정치의 자화상 이제는 지워야

1999년은 언론계가 하루 빨리 보내고 싶은 해다. 언론을 둘러싼 좋지 않은 사건들이 유난히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해가 며칠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갖가지 추문이 끊이지 않는다.



선거 보도를 불공정하게 하면 법으로 기자 활동을 1년 간 금지시키겠다고 여야가 나서서 난리가 나더니,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지난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에게 삼성 그룹의 선거 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져 소란스럽다. 방송협회를 중심으로 한 방송사들은 노조와 시민단체가 어렵게 싸워 불만족스러우나마 국회 통과 직전까지 밀고간 방송법을 이제 와서 수정하자고 성명을 내고 뉴스를 뒤덮는 등 야단이다.



불공정 선거 보도 처벌 추진은 반나절의 소동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단순한 실수나 무지라기보다는 정치권의 뿌리 깊은 언론관을 슬쩍 엿본 듯 하기 때문이다.



물론 원인 제공이 언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언론은 선거 때만 되면 편파, 왜곡 보도로 물의를 빚곤 하였다. 앞으로 언론은 어떤 이유로도 전과 같은 불공정 보도를 되풀이해서는 않 된다. 그러나 정치권이 진정 언론의 제자리를 찾아주고자 한다면 그 동안 뜻 있는 언론계 인사들과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요구했던 민주적 방송법 제정과 정간물법 개정 등을 추진했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소동은 단순히 언론의 잘못이 원인이라기보다 언론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속내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인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사장 시절 선거 자금 전달 심부름은 갈 데까지 간 재벌 언론의 실상을 보여주는 듯 하다. 잇따라 터져 나온 권언 유착의 추태 중에서도 가히 압권이라고 할 만하다.



자금 전달이 불법이 아니라고 해서 추태가 희석되지는 않는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권과 재벌 모두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재벌의 홍보 담당자로 선거 후보들에게 돈 봉투나 전달하고 다니는 사주의 신문이 제대로 된 보도를 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정말로 중앙일보의 변명처럼 지난 시절의 부끄러움으로만 남길 바란다.



방송사가 사장들을 중심으로 정치인들에 로비를 하여 방송법 제정의 덜미를 잡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부족해서 이제는 누더기가 된 방송법 조항 가운데 그나마 위로가 되는 편집권 보호 조항까지 비난하고 나섰다. 국회 법사위까지통과한법안을 공기인 지상파를 이용해 일제히 공격하는 행태는 가히 뻔뻔스럽다.



양심적인 방송인이나 시민단체들이 지금 분개하면서도 법 수정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오직 법 통과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정부 비위나 맞추며 지내다가 이제 힘들여 여기까지라도 오니까 뒤늦게 판을 새로 짜자는 듯한 요구는 수 년 간 법 제정을 위해 투쟁한 이들에 대한 모욕임을 알아야 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아무리 어지러운 세태도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혹 남은 언론계 추문들이 있으면 1999년에 마저 모두 털고 제발 새해에는 이런 어수선한 꼴들을 다시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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