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맹물 연료로 전투기 추락
예비군 훈련장서 이야기중 정보입수, 군대 동기 내세워 정황파악 뒤 국방부 출입기자에 넘겨
김병수 연합뉴스 정치부 기자
"설마, 아무리 군기가 해이해졌기로서니 세상에 그런 일이..."
누구라도 그랬겠듯이 나도 지난 9월 중순 공군 전투기(F-5)에 기름 대신 물을 주입해서 추락하는 어이없는 사고가 있었다는 얘기를 처음 듣고서는 도저히 이를 ··팩트'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병역의무를 공군에서 마친 나로서는 누구보다도 공군의 정교하고 치밀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중순 경남 진주. 연례행사로 찾아오는 동원예비군 훈련소집 덕분에 나는 취재현장을 떠나 ··홀가분한' 기분으로 ··4일간의 특별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정치부 기자로서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중이어서 다음 기회로 미룰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경우 나중에 사정이 더 복잡해질 수 있어 그대로 응했다.
입소 둘째날, 휴식시간을 이용해 8년여만에 만난 동기와 훈련받던 일들, 직장생활, 최근 공군소식 등에 대해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던중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맹물 전투기' 소식을 접하게 됐다.
사고원인이 그동안 많이 들어왔던 기체결함이나 조종사 실수가 아니라 ··물이 다량으로 섞인 연료때문'이라는 말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하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일단 사실여부를 좀더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동기에게 주변 상황에 대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경험상 내가 직접 나설 경우 ··기자'라는 신분때문에 경계할 가능성도 있고, 혹시 나중에 기사화됐을때 발설자가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나서 다른 동기들에게 항공유 관리실태, 전투기 사고시 조사 및 처리 등에 대해 취재했다. 경험보다 훌륭한 취재원은 없다고 생각해서다.
추가 확인결과 근본원인이 POL탱크(항공유 보관탱크)에 금이 가 그 틈새로 지하수가 다량 유입됐기 때문이며 드레인(불순물 제거)작업, 시료채취조사 등 3-4단계의 사고방지 절차를 전혀 밟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당시 여러대가 출격준비중이었는데 야간비행이어서 이륙간격이 길어 그나마 추가사고가 없었다는 것도 확인했다.아찔한 내용이었다.
특히 조사결과 항공기에 주입된 연료중 물이 95% 이상을 차지, 사실상 맹물이었다는데 대해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사고 책임소재를 놓고 공군 내부에서 다춤이 벌어졌으며 중간 관리책임자만 온통 책임을뒤집어써··희생양'이 됐다는 말도 듣게 됐다.
현역시절 들었던 "항공기 사고가 나서 조종사가 죽으면 조종사가 책임을 뒤집어쓰고 조종사가 살아남으면 대체로 정비사에게 넘어온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서울로 돌아온 이후 이와같은 사고가 재발되는 일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기사화하기로 결심하고 곧바로 내용을 정리, 이광복 정치부장을 통해 국방부를 담당하는 사회부로 넘겼다.
기사화될 경우 미칠 파장을 고려해 최종적으로 책임있는 군 당국으로부터 재확인하는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어 내용을 넘겨받은 사회부 맹찬형 선배의 주도면밀하고 공격적인 취재의 결과로 ··맹물 전투기 추락사고' 기사는 공군 당국으로부터 사실확인을 거치고 자세한 피해일시와 장소, 피해내역 등이 보강돼 세상에 나오게 됐다.
공군장교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온 나로서는 마음의 갈등이 뒤따랐지만 기자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기로 몇차례 마음을 다잡았었다.
보도된 후 전 공군기지에 있는 노후된 POL시설을 현대화하고 연료주입 및 관리를 자동화하기로 했다는 소식과 희생당한 조종사를 위해 추모비를 건립키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기자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뒤늦게나마 사고내용을 사실대로 밝히고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공군의 모습을 보고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들로부터 더욱 신뢰받는 공군으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갖게 됐다.
당초 군 내부와 관련된 일이라 자세한 취재경위를 밝히지 않고 묻어두려 했지만 이제 군 당국에서 보도경위에 대해 어느정도 파악했다는 얘기를 듣고 취재기를 통해 밝히기로 결심하게 됐음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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