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언론 '반면교사'




  원용진  
 
  ▲ 원용진  
 
최근 필리핀 언론가에서 있었던 웃지 못 할 쟁점 두 가지. 필리핀 언론 일부에서 언론인들을 무장시키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언론 보도에 불만을 품은 집단들이 언론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잦은데 대한 대응이라 한다. 대체로 그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이 우세하지만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에는 동의하며 각별한 주위를 기울이자며 다짐을 하고 있다.



비슷한 쟁점이 하나 더 있다. 필리핀 남부 지방의 취재가 무장세력의 상존 탓에 너무 위험하다며 훈련된 경찰을 기자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경찰에서 내 놓은 안인데 일부에서는 잘 훈련된 경찰이 기자 연수만 받는다면 정보 자원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라며 동조하기도 했다. 물론 이 쟁점도 없었던 일로 하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듯 하다.



위험에 처한 저널리즘. 필리핀의 예이긴 하지만 저널리즘은 이제 그 보도 내용으로 인한 물리적 위험도 감수할 지경에 놓였다. 이것은 시계바늘을 한 참 거꾸로 돌린 이야기인 듯하지만 저널리즘이 사회에서 내팽개쳐 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현실적 단면이기도 하다.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전에 없이 커져만 가고 있다. 빛의 속도로 불신은 가속화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진전과 언론 신뢰도가 반비례하는 이 역설 앞에서 많은 저널리스트들은 좌절하고 있지만 언론의 위기는 늘 시장의 위기로, 사업의 실패로만 논의되는 단견에 그치고 만다.



최근 한국언론재단에서 기자 정체성을 연구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놀랍게도 “언론인 : 전문가인가, 직장인인가”라는 선정적이고, 유치한 제목을 붙여 놓았다. 제목의 선정성과 유치함을 떠나 문제 설정 자체가 언론인을 직장인으로, 이해관계의 당사자로 모는 경향성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언론과 언론인이 천상을 주유하는 주체가 될 수는 없겠지만 걷잡을 수 없을 속도로 그 위상이 추락하고 있음을 감출 수는 없다. 언론인을 전문인으로 보지 않고, 전문가, 직장인으로까지 - 고의적으로 혹은 실수로 - 낮추는 언론전문단체에 이르고 보면 어떤 언설로도 그 참담함을 드러낼 길이 없다.



언론 위기의 논의 물꼬를 트는 과감함이 요청되는 때다. 언론인의 무장으로도, 시장의 복원으로도, 산업의 정상화로도 언론 위기는 돌파될 수 없음을 인식하는 지혜가 더 없이 필요한 때다. 사업 다각화나 디지털 혁명에 몸을 싣는 일은 위기 순간을 잠깐 모면하는 일은 될 지 언정 위기 타개책일 수는 없다. 시장주의자들이 펼치는 언론 시장 활성화 우선은 어쩌면 언론을 영원히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큰 음모인지도 모른다.



언론 위기를 언론 내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사회적 위상을 새롭게 하는 노고가 시급한 때다. 아직도 파국을 파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기운이 언론에 남아 있음에 사회적 냉소가 흐르긴 하지만 이것 역시도 언론이 헤쳐 나가야 할 과제다. 냉소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꾸어 내고, 추락한 위상을 끌어올리며, 사회 내 갈등과 이해관계의 엄정한 중재자로 자리매김하는 일을 언론인 외에 누가 해낼 수 있을까.



필리핀에서와 같은 의제가 등장하는 일까지야 가지 않겠지만 우리 언론에 보내지는 눈초리가 예전 같지 않고, 차갑기가 그지없을 때 언론 스스로가 위기 담론의 물꼬를 새롭게 틀어내는 대역사를 해내야 함은 당연하거니와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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