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사회 생존의 조건




  전규찬  
 
  ▲ 전규찬  
 
기자사회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 기자들이 속한 신문 미디어 기업의 위기와 연동된 것 같다. 기자도 밥 벌어먹고 사는 생활인인 바에야,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직장의 문제는 직업의 문제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대다수 일간지들이 오랫동안 수익성 압박을 받아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몇몇 신문사들이 보여주는 심각한 경영난은 위기를 넘어 마침내 총체적 파국 상태에 이른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기 충분하다. 과포화 경쟁 상태에 이른, 그래서 저널리즘의 양식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선정주의라는 극약 처방을 택한 스포츠 신문시장은 최악의 지경이다. 다투어 임금삭감과 명예퇴직, 구조조정 등 ‘IMF’ 시절에 유행했던 조처들을 새로이 꺼내들었다.



비단 스포츠지뿐만 아니라, 종합일간지에서도 유사한 조짐이 보인다. 기자사회는 신문사의 도미노식 붕괴, 이로 인한 전문 기자직의 몰락을 우려하는 이야기들로 흉흉하다. 신문기업 부도와 대량 실직사태는 막연한 기우가 아니다. 언제 닥칠지 모를 모두의 악몽이다. 정부와 시민운동단체들이 주도하는 언론개혁에 대한 반발과 냉소도 이러한 위기 심리에 부분적으로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위기는 대체 어디서 오는가? 혹자는 경기 탓으로 돌린다. 한국 사회가 오랜 불황을 겪다보니 기업 광고가 줄고, 자연스레 신문사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신문사들은 더욱 자기 살을 깎아 먹는 과다 불법 경쟁으로 내몰린다. 그래서 경기가 좋아지면 위기는 극복될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가진 또 다른 사람들은 신문 권력 혹은 체제 권력으로서의 신문에 대한 사회·정치적 이념 공세, 이로 인한 전통적 신문 저널리즘의 정통성 상실을 위기의 원인으로 든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부 우익지들의 반민주적, 반언론적 행태가 현재의 추락을 자초했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여기에 무가지들의 대량 투입, 그리고 인터넷 매체의 등장이라는 기술적 요인을 추가시키면 사태는 더욱 복잡해진다. 특히 인터넷이 순식간에 신문과 방송을 위협하는 매체로 자리 잡은 것은 언론학자로서도 놀랄만한 일이다. 그 주도적 위상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발적이고 다 방향적인, 즐거움의 코드까지 추가시킨 인터넷 언론의 소구력은 미래 독자층인 십대 사이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사이버 뉴스의 효과는 전인구적으로 가히 폭발적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는 전통적 저널리즘과 소수 저널리스트들이 누렸던 지배력에 대한 의심과 불만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기존 인쇄 저널리즘의 위기, 전통적 언론 기자직의 불안은 복합적으로 얽힌, 피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의 징후이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현실과 냉정히 대면하고 그 속에서 미래의 행방을 찾는 노력만이 유일한 선택으로 남는다. 개인적인 일자리 불안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글쓰기 하는 자’로서 기자가 지닌 집단 실천적 의미를 깊이 성찰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외부에 닫힌 기자 전문가주의는 더 이상 위안이 될 수 없다. 누구나 현실에 대해 말할 수 있고, 그럴 역량을 갖추었으며, 또 이를 위한 일정 공간 창조의 기술이 확보된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실하다. 기자들이 냉정히 물어야 할 것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담론생성의 능력을 과연 갖추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없다면 바로 그 부재를 불안의 궁극적 이유로 받아들어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변환시킬 열쇠도 여기에 있다.



기자들이 지식인의 위치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 실천의 조건 마련을 위해 부단히 자기 계발해야 한다. 일자리 위협에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신문기업의 경제적 위기를 떠벌리는 것으로, 사회의 이해를 구하고 정부의 재정 도움을 요청하는 식으로 기자사회의 근원적 불안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탈 권력화해 지적 담론을 생성하는 지식인사회의 일부로 변신하는 일, 그럼으로써 자기가 하는 말의 값을 올리는 일이 선차적이다. 전규찬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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