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증면경쟁으로 신문업계가 어지럽다. 예정됐던 면수를 더 늘리는가 하면 미처 일정에 대지못해 계획을 늦추는 등 경쟁지 눈치보기도 극심하다.
이번 싸움의 화두는 '경제'다. 표현은 다르지만 신문마다 내세우는 증면의 변은 같다. "갈수록 늘어나는 경제기사 요구 때문에" "투자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 등 등. 한마디로 독자들이 원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경제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컸던 IMF시절에 오히려 지면을 대폭 줄였던 걸 보면 이는 군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번 싸움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탐욕스런 자본의 논리를 주목한다.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면서 늘어나는 광고물량을 놓칠 수 없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계산이 증면경쟁을 불렀다는 말이다. 실제로 광고가 받침이 되는 몇몇 신문이 증면을 주도하고 있는 점, 기사보다 광고가 더 많이 늘었다는 점, 윤전설비가 받침이 안돼 일부에서는 편법인쇄가 불가피하다는 점 등은 이번 싸움의 이면을 잘 말해준다.
뿐만 아니다. 여기에는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신문사들의 패권주의가 결부되어 있다. 이번 기회에 우월한 자본력으로 경쟁지의 기를 죽이고 군소신문들과의 격차를 확실히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설득력 없는 증면의 부작용은 적지 않다. 대규모 구조조정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 게 도대체 얼마나 됐는가. 한창 때보다 기자인력은 30% 가량 줄었는데 지면은 이미 감원 이전보다 늘었다. 그만큼 노동강도가 세졌다는 말이다.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라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이러니 뻔한 인력으로 운동장만한 지면을 채우는 데 무리가 따르는 건 당연하다. 기자들은 발품을 팔기보다 전화기 앞에 붙어있거나 보도자료 베끼기에 바쁘다. 외부자료를 그대로 전재하는 지면도 늘었다. 노골적인 업체 홍보기사, 기사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사까지 버젓이 기자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경우도 심심찮다.
증면 차림표는 어떤가. 재테크, 증권, 부동산 등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한 때 1면의 금융지표가 유행하더니 이번에는 하나같이 아파트시세표를 넣고 증시시황을 2개면으로 늘렸다. 1주일 뒤면 신문들이 다 똑같아진다는 말은 그래서 괜한 게 아니다.
경쟁은 얼마든지 반길 일이다. 그러나 경쟁도 경쟁 나름이다. 거기엔 공정한 규칙과 생산적인 목적이 있어야 한다.알맹이없는 몸집 부풀리기, 상대 목조르기, 달라지기 아닌 닮기 경쟁은 퇴행이다. 생태계는 상생의 원리가 기본이다. 기업도 언론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증면경쟁에는 이런 바탕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물량경쟁이 아니다. 언론은 개혁의 사각지대로 곳곳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언론 관련 비리가 튀어나올지 모를 정도로 꼴이 말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해관계에 따라 독자를 볼모로 논조를 달리하는 병폐는 여전하다. 그럴듯한 껍데기로는 더 이상 '독자들의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다. 독자들이 진정 원하는 건 두툼한 신문이 아니라 제대로 만든 신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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