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관련 보도는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의 평화, 남북한을 국가 대 국가로 생각했을 때 국익이라는 측면,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 문제, 이데올로기 등 여러 가지가 있는 데 이것들은 때로 모순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미래지향적인 방향에서 보도하는 것이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는 급진전했다. 북한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달라졌고, 언론의 시각도 변화가 있었다. 보도 내용도 많이 부드러워진 것이 사실이다. ‘김정일’에서 ‘김정일 위원장’으로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용어가 보편화됐고, 북한을 자극하는 보도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7년째 북한 취재를 전담하고 있는 MBC 김현경 차장은 “남북관계가 적대와 대립의 관계에서 협력의 관계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에 남북 관련 보도도 질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북 보도에서 기자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도 남북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과 ‘남북관계의 진전’이 충돌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써야 하는 것이 기자지만 그것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일 때 갈등을 겪게 된다고 기자들은 말한다. 지난해 평양에서 열렸던 ‘8·15축전’에서의 ‘일부인사 돌출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
‘사실’보다 ‘흐름’ 읽어야
당시 8·15축전 공동기자단으로 북한을 방문, 이 행사를 취재했던 한 기자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보도한 방북단의 돌출행동이 이념논쟁으로 확대되고 굴절되면서 의도하지 않은 파장을 낳았다”면서 “보도하는 것이 옳은 지 보도하지 않는 것이 옳았던 것인지 아직도 고민스런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당시 흥분했던 재야단체 인사들과 언론도 차분하게 스스로를 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현경 차장은 “기자에게는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 것보다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실이 본질에서 벗어난 우발적인 것일 때 이를 부각시키는 것은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다”며 “기자가 흐름을 읽고 중심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북 관련 보도는 남북관계가 조금만 경색될 조짐만 보여도 금방 과거로 회귀하는 관성이 있다. 오랜 기간 우리 언론을 지배해 온 북한에 대한 경직된사고와 국민 정서와 맞물린 ‘안보상업주의’는 남북관계에 있어 언론의 시각을 ‘미래’보다 ‘과거’에 묶어두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29일 서해교전이 발생하자 통일부를 오래 출입한 한 중앙지 기자는 “어떻게 보도할 지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6.15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더 이상 적이 아닌, 화해와 협력의 대상이었지만, 서해교전이 발생하면서 언론은 사태의 원인과 실상을 파악하려는 침착함보다는, 북한을 다시 적으로 규정하고 강경한 대응만을 주문했다. 대북 보도에 대한 원칙이나 철학이 없기 때문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춤추는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또 다른 통일부 기자는 “북한관련 보도는 국민 정서나 여론을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서해교전 사태의 경우 “그간의 ‘기대’를 저버리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국민들에게 더 큰 실망감으로 다가왔고, 언론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실제 국민정서나 여론이라는 것이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나 논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언론이 앞장서서 ‘응징’과 ‘강경 대응’을 주문해 놓고 그것이 국민정서라고 말하는 것은 비겁하다는 것이다.
데스크 ‘과거시각’ 못 벗어
이는 현장 기자들과 데스크, 또는 경영진과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직접 취재할 기회를 많이 가졌던 통일부 기자들은 가능한 남북화해 협력이라는 관점에서 기사를 쓰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 고민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문제는 현장의 분위기가 전달되지 않은 채 데스크들이 과거의 경험과 시각에 얽매여 기사를 주문한다는 것.
한 기자는 “대북문제 관련해서는 데스크, 특히 오너나 경영진의 생각이 결정적이다. 아이템 선정 과정에서 현장 기자가 발제한 것 중 어떤 것을 취사선택하느냐는 데스크의 몫”이라며 “특히 사설과 논평, 만화·만평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정부에 대한 입장이 논조 좌우
기자들과 데스크와의 시각 차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북한 문제의 경우 우리사회의 이념적 스팩트럼이 너무 다양해 어디에 기준을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기자들은 기사를 쓰고 나서 보수, 진보 양쪽에서 다 욕을먹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남북문제는 4700만이 모두 전문가다. 문제는 변화된 상황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것인데, 그래서는 자기 생각의 한계를 벗어날 수도,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도 없다. 그러다보니 북한에 대한 논조는 결국 북한에 대한 언론사의 성향과 현 정부에 대한 정치적 입장이 좌우하게 된다.” 통일부를 출입하는 한 방송사 기자의 얘기다.
북한에 대한 시각이 북한 자체에 대한 입장보다는 정부에 대한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정부에 대해 호의적이면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면 정부와 갈등관계에 있으면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고 북한에 대해서도 강경한 자세를 보인다는 분석이다. 언론사의 한 구성원으로서 기자들도 이런 구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나친 경쟁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써야하는 것도 기자들에겐 고민거리다. 이번 서해교전 사태에서 북한군 사망자수를 놓고 벌인 언론사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오보가 단적인 사례. 지난달 27일 중앙일보가 1면 머릿기사로 “서해교전 때 북한이 24명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하자 조선일보는 29일자 1면에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북한군 13명 사망”이라고 보도했고, 한겨레는 30일자에 중국 북한소식통의 말을 인용, “북한 서해교전 때 17명 사망”이라고 보도했다. 모두 확인되지 않은 ‘설’에 불과하다.
민족문제 외신에 의존해서야
취재시스템과 전문성도 북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가로막는 벽이다. 10년간 북한취재만 전담해온 중앙일보 이영종 기자는 “북한은 취재원이 없는 출입처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지 않으면 쓰기 힘든 기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는 확인해주지 않고 북한을 상대로 직접 취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북한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자기만의 ‘소식통’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북한 관련 기사를 주로 담당하는 통일부 출입기자들은 다른 부서와 마찬가지로 1∼2년, 짧게는 6개월마다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전문성 부재는 북한 관련 기사에 대한 외신 의존도만 높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북한의 경제개혁 문제 역시 일본 교도통신이 먼저 보도한 것을 우리 언론이 인용 보도한 경우. 이영종 기자는 “북한의 경제변화는앞으로 북한의 변화와 남북관계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다. 지금은 북한을 드나드는 우리측 경협 인사들도 많고, 북경과 동경에 특파원도 나가 있어 만약 우리가 관심 있게 주의를 기울였다면 먼저 포착할 수 있는 기사였다”며 “그만큼 우리의 관심과 기자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북한에 대한 기자들의 인식과 고민의 폭이 달라지고 있지만 이를 위한 언론사 차원의 지원과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전문기자를 키우고 통일 이후의 잠재적 독자까지 고려한 신뢰를 쌓아나가는 장기적 안목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시류와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 남북관계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원칙, 그에 맞는 균형감각을 갖추기 위한 연구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일선 기자들의 바람이자 지적이다.
박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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