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부정한 언론이 타락한 기자를 낳는다
고용주와 종사자 모두 바른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자
김구철 KBS 뉴스투데이팀 기자
I. 겨울비가 처량하게 내리던 97년 12월. 야당 후보의 지방 유세를 취재하러 울산에 내려가 있었다. 후보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기사화되는 시기, 비를 맞으면서도 후보를 근접 취재할 수밖에 없었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함을 탓하며. 그때 여권 후보에게 선거 전략을 조언하는 언론인의 문건이 공개됐음이 알려졌다. 취재 기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비분 강개했다. 문건의 작성자와 전달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치부 기자들의 중립 촉구 서명이 뒤따랐지만 그걸로 그만이었다.
그러고 2년. 똑같은 일이 저질러졌다. 이번에는 정보 장사꾼까지 등장했다. 한 걸음(步) 더 나간(進) 셈이다.(한자로 쓰니 느낌이 묘하다. 후진인가?). '자정'의 목소리까지는 지난번과 똑같다. 그러나 거기서 끝난다면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1보 전진(前進)이 필요하다. 언론 개혁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현 상황은, 그래서 지극히 다행스럽다. 어쨌건 만 12년 기자 생활에 기자라는 사실이 이토록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II. 따지고 보면 우리 언론 역사는 권위와 영광을 지향하는 역사라기보다는, 권위와 영광을 추종해온 역사라는 사실을 나는 잊고 지냈다. 술과 담배에 찌들고 기미가 잔뜩 낀 얼굴을 싸구려 분을 더께더께 발라 감춘, 늙은 기지촌 여성을 연상케 하는 역사다. 간간이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갈라 알릴 것은 알리는 언론의 금도를 지킨 예가 없진 않지만, 한 세기를 조금 넘는 짧은 언론사가 이토록 추해진 것은 기본적으로 언론인 전체의 책임이다.
한국 언론의 추한 역사는 종사자의 문제기도 했지만 고용주의 문제에 기인한 바가 더 컸다. 기사 경쟁에 매진해야 할 기자가 '민원' 해결로 평가받는 현실은 무엇인가? 광고 수주 경쟁에, 행사 참석자 경쟁, 심지어 수해 성금, 이웃 돕기 성금까지 경쟁하는 것이 종사자의 문제일까? 정부 치적을 홍보하기 위해,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종파의 우월성을 전파하기 위해, 심지어 특정 지역의 이익을 주장하기 위해 생겨났다 사라진 수 없는 언론사들. 거기서 언론 고용주의 언론관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부 현존 언론-전국이든 지역이든-도 이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태적 한계를 가진, 정통성이 결여된 언론사는 '조직의 보호와 조직의 이익을 위해' '조직원으로서의의무를다하라'는 명분을 걸고, 부정(不正)한 거래를 강요한다. 종사자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부정한 거래를 하고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몸담은 조직을 부숨으로써 언론이 발전할 수 있다고 스스로의 양심을 달랠 수도 있을 테니까. 아니면 너무나 자주 부정한 거래를 강요받다 보니 옳고 그름의 판단능력을 아예 상실할지도 모른다.
III. 언론은 민주 정치체제의 주요한 구성요소며 정치 제도의 일부다. 그런 언론에 대해 정치와 무관하라는 요구는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요즘 여권의 표현을 빌리자면 국헌을 문란케 하는 국사범이 되고야 만다. 정치 선진국에서도 언론인이 정치권으로 뛰어드는 일은 흔하다. 가까이는 앨 고어 미국 부통령이 기자 출신이고, 영국의 피터 만델슨 북아일랜드 장관 역시 방송 기자 출신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정언 유착'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는 것은, 언론의 껍질을 벗고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해답은 여기 있다.
언론 종사자 개개인에게는 정치와 언론 사이에서 분명한 선택을 하도록 하라. 또 '진정한 언론'이기를 포기한 '언론'에 대해서는 '언론'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할 권리를 주라. 그러기 위해 법과 제도를 고치라. 그 위에 '진정한 언론'의 고용인과 종사자가 공동으로 노력하자. '언론'이라는 제도를 '고용하고 운영하며 비용을 지불'하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감시, 격려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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