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별 친분 의존하는 취재방식 바꿔야
정치부 기자들 권언유착 원인제거 주장..'개인 야심 탓' 비판도
기자의 추악한 단면이 ‘언론 문건’ 사태로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는 지경에 이르자 기자사회에서는 정치부 취재 시스템에 메스가 가해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기자들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에 참담한 심정이다. 심각한 기자사회의 위기로 인식하는 SBS의 한 차장은 “어디 가서 기자란 명함 내밀기 어려운 환경을 자초했다”며 “내년 총선에서 기자 출신이란 게 마이너스가 될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의 한 차장은 “기자에 대한 사회 밑바닥의 정서는 부러움이 아니라 ‘깡패보다 의리 없고 창녀보다 정조 없다’는 것”이라고 자조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성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 기자들의 정서다.
일선 정치부 기자들은 불순한 목적을 품은 일부 기자들의 ‘야심’을 비판하면서도 계보 취재 환경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를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꼽았다.
한 MBC 간부는 “80년대에는 비서가 들고 온 총재 연설문을 읽은 기자가 ‘이따위로 썼어’라며 호통치고 자랑스럽게 고쳐주는 현장도 목격했다”면서 “이번 사태는 도덕성을 상실한 채 권력에 가까워진 기자의 어두운 역할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국민일보 정치부의 한 기자는 “97년 대선 당시 중앙일보 문건 파동 이후 정치인과 특별한 유착관계는 접해보지 못했지만 일각에선 정치인들의 기자 인력관리설이 여전했다”면서도 “하지만 기자로서 문건을 직접 만들어 더구나 공작정치 차원에서 이뤄지는 사안을 얘기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SBS의 차장은 문건 사태에 대해 “정치 참모 역할을 한 문일현 차장과 같이 문건을 작성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며, 이도준 차장의 경우는 기사가 되지 않는다면 (자료를) 폐기시키는 게 기자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두 기자의 케이스는 빙산의 일각”이라며 “정치부의 경우 취재원과 밀착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다른 언론사에도 이런 부류의 기자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의 한 기자는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사들이 친한 기자들을 집무실로 불러 자주 조언을 구한다”며 “이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바꾸거나 신분이 뒤바뀌는 경우는 없지만 일부 정치부 기자들은 출세의 도구로 삼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전영기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는<신문과방송> 10월호에서 “한국 정치판을 주도해 갔던 고전적 주체가 권력 정당 국회였다면, 이제 여기에 언론을 포함시키지 않으면 안될 만큼 언론은 정치판에서 주체로 행세하고 있다”면서 “언론, 특히 정치기사나 정치 사설의 위력은 권력 자체를 공동화 상태로 빠뜨릴 수 있고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해졌다”고 지적했다. 전 기자는 이어 “정치인들이 정치부 기자들 또는 그보다 높은 정치부장이나 편집국장 또는 사장을 자기들과 같은 ‘정치인’으로 보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으며 언론과 정치부 기자를 특정 정파적 입장을 옹호하거나 배척하고 거기서 이익을 얻는 정상배쯤으로 취급하기 일쑤”라고 소개했다.
한 세계일보 기자의 말이다. “문 기자는 이번 사태가 표출되지 않았다면 대단히 우수한 기자로 평가받을 것이다. 국가의 정보를 운영하는 국정원장과 유착이 깊다는 것은 이번 사건이 없었을 경우 그만큼 고급 정보가 많다는 의미이다. 무능 기자의 상징이 교과서적 ‘불가근 불가원’ 원칙을 고수하는 게 아닌가. 특종 기자는 때론 편향성을 보이며 한발 깊숙이 들여다 놓아야 한다. 그래서 취재원과 폭탄주 마시면서 몸 파는 것이다. 파울 플레이냐 페어 플레이냐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연합뉴스 정치부의 한 기자는 “내밀한 흐름을 읽기 위해선 어느 정도 유착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며 “궁극적으로 인물 중심의 정치 기사에서 탈피, 전체 정치구도의 변화상을 조망하는 식의 지향점이 있는 정치기사 형태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일본식으로 정당 계파를 커버하는 시스템은 권력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을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지적했다. 이 기자는 “미국 워싱턴 포스트 한 기자가 20년 간 기자생활하면서 의원들과의 식사 횟수는 10여회에 불과하다는 경험을 얘기할 때 놀라웠다”며 “그 기자는 정치인으로부터 멀리 있어야 객관적으로 기사를 쓸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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