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서주석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정일용 연합뉴스 논설위원
▲사회
△정구철 본지 편집국장
6·29 서해교전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 교전 발발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와 사후 대책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제기됐던 서해교전과 관련한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기 위해 전문가들을 초청,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는 지난 8일 오후 기자협회 사무실에서 열렸다.
사회=이번 6·29 서해교전은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측 피해가 컸던 게 한 원인이 된 것 같은데, 먼저 이번 사태를 둘러싼 정황과 쟁점에 대해 얘기해달라.
서주석 박사(이하 서)=서해교전과 관련한 논란은 우선 의도적인가 우발적인가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측에서 열린 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르러 북한의 국제적 이미지 실추나 대남, 대미관계 악화를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얻으려고 한 것이 무엇이었나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또 다른 논란은 실제 의도된 도발이라면 그 기획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그 아래, 즉 군부 차원의 시도였는가. 이런 문제를 놓고 우리측에서는 그럼 어떻게 대응했어야 하는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이대근 위원(이하 이)=의도된 것이냐 아니면 우발적 사건이냐는 사실과 관계없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나뉘었다. 사건의 진상에 대해 나름대로 추측할 수 있겠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결론부터 내리고 끼워 맞추려 해 초기 논쟁이 소모적으로 흘렀다.
정일용 위원(이하 정)=이번 서해교전과 관련해 관심을 끈 반응은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지난 2일 “북측 함선이 남측으로 내려와 공격한 것은 사실이나, 북한측이 의도적인지 아니면 우발적으로 도발했는지 여부를 말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한 발언이다. 남북은 사건 당사자로 상반된 입장인 만큼 제3자의 입장, 특히 정보능력이 뛰어난 미국의 입장은 참고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 국방부가 초기에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자 언론들도 거기에 편향돼 사건을 취재 보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회=서해교전과 관련한 언론보도가 책임론이나 문책론이 주류를 이룬 반면, 문제의 구조적인 원인을 짚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있다.
서=NLL(북방한계선)을 둘러싼남북간 해묵은 분쟁이 또 한번 충돌로 비화됐다는 게 가장 객관적인 해석일 것이다. NLL은 지난 53년 유엔군 사령관이 설정해 20년 가까이 문제없이 지내오다가 지난 73년 북측에서 공식 제기된 뒤 이를 둘러싼 논쟁이 시작됐다. 매년 6월 꽃게잡이 철을 전후해 월선, 침범 등의 문제가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99년에는 북측이 일방적으로 서해해상 군사분계선이란 것을 발표하기도 했다. NLL에 대한 남북간의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가 이번 사건의 배경이 됐다고 볼 수 있으나 국내 언론에선 NLL과 관련한 보도가 많지 않았다.
정=북측에서는 60년대에도 NLL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북측이 NLL을 20년 가까이 사실상 인정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언론 보도와 관련해선 지난 99년 당시엔 NLL을 넘은 것에 대해 ‘영해 침범’이라는 접근이 많았으나 이번엔 NLL이 본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모습에서 차이를 보였다. 긍정적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서=우리측 인명 피해가 많았고 국민적 충격이 크다보니까 문책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또 언론이 이런 국민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제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번 교전사태의 원인 등을 완벽히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문제의 수역에서는 NLL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또 그 만큼 위험요소가 상존한 지역이었다. 오히려 지역의 위험성에 비해 교전이 적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99년 연평해전 이후 남북 모두 제 각각 해법을 찾기 위한 협상제안이 있기는 했지만 남북당국간 회담에서는 거론되지 않았고 언론에서도 문제제기가 없었다.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 노력이 시급하다.
이=NLL이 남북간 갈등 요인이긴 하지만 이번 사태의 충돌원인이라고 지목할 수는 없다. 무력 충돌할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얘기다. 북한이 평화적으로 해결할 자세가 결여돼 있다는 게 문제다. 영해관련 합의를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해결의 방식으로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합의다.
정=무장한 남북 함선이 자주 만나는 곳에서 충돌이 안 생긴 게 오히려 눈여겨볼 특이한 현상이다. 어민문제가 직접원인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예년과 같지 않게 특이상황이 자주 발생했고 긴장이 더해지면서 충돌이 빚어진것으로 보인다. 책임을 따지자면 근본적으로는 일방적으로 NLL을 그어놓은 유엔군사령부에게 있고, 그 문제를 그대로 방치해 놓은 정부당국,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 북쪽도 사상자가 많았다. 지난 99년 연평해전 당시 언론은 충돌이 재발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얘기했지만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뒤 관심 갖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앞으로 제3의 교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다분하다. 때문에 ‘재발을 막을 대책이 무엇이냐’는 얘기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언론이 원인을 제대로 짚지 않으니까 대책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서=설령 대책을 만들고 제도화한다고 해도 이를 실제 지키려는 의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양측이 지킬 수 있는 분계선을 정하는 것은 양측간 신뢰를 확보하고 존속시킬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 가능하다. 전반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수역 문제 해결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현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는 가운데 양측이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사회=이번 교전사태와 관련해 햇볕정책에 대한 일부 언론의 집중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다. 햇볕정책이 안보의식의 해이로 연결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정=정부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은 정확히 말하면 대북 화해협력정책이다. 이솝우화대로의 ‘햇볕정책’이라면 북한이 스스로 옷을 벗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햇볕정책’이 실패했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화해협력정책은 전쟁을 없애자는 정책인데, 그 때문에 교전사태가 빚어졌다고 연결시키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이=대북 정책은 남북간 갈등이 없음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다. 포용정책을 시작하면 북한이 아무런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 가운데 정책이 완전무결하게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 갈등이 나타났으니까 정책이 잘못됐다고 하는 지적은 판단의 전제가 뒤집힌 것이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노태우 정권 때부터 지속돼 온 대북 포용정책으로 과거보다 대결상태가 완화되고 대화수준도 높아졌다. 진행중인 정책이라고 봐야 옳다.
서=마찬가지 의견이다. 햇볕정책이 잘못됐기 때문에 교전사태가 빚어졌다는 것은 앞뒤를 잘못 본 것이다. 과거에 비해 평화의 가능성이 높아진 게 햇볕정책의 성과다. 전반적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쪽으로 왔지만 군 문제 등 아직 북한의 딱딱한 부분을 유연화하지 못한 상황이라고봐야 한다. 햇볕정책 등으로 안보의식이 해이해져 이번 사태가 빚어졌다는 지적은 교전을 실제 담당한 장병의 안보정신을 호도하는 것이다. 장병들은 죽을 각오로 싸웠다. 침몰시키지는 못했으나 장병들은 작전의 성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북한을 의식하고 안보관이 해이해졌다는 것은 장병들에 대한 명예 훼손이다.
사회=확전 가능성 문제와 관련해서도 언론의 보도태도가 엇갈렸다.
이=확전 문제는 교전사태를 조기에 끝내기 위해 어떻게 했느냐는 게 본질이다. 북측의 공격에 대응해 북측에 얼마나 많은 손실을 입혔는가, 더 많은 손실을 입히는 게 승전 아니겠냐, 그래서 확전을 했어야 한다는 접근법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북측은 경비정 1척이 거의 파괴돼 교전을 포기하고 NLL을 넘어 퇴각해 갔는데 미사일을 쏴서라도 침몰시켰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감정적 대응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또 북측의 레이더가 돌았느냐 아니냐를 놓고 확전 논란이 있었는데, 이 역시 부수적인 문제로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서=우리 함정이 침몰한 만큼 북측 경비정도 침몰시켜야 했다는 기대와 관심을 언론이 다듬지 않고 지면에 담아 준거 틀로 삼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북측 역시 도발에 따른 치명적 타격을 입고 경비정이 끌려갔다. 우리 군은 NLL 사수라는 기본 입장과 태세를 지켜냈다. 이번 교전에서 우리가 강력한 입장을 취하고 대응한 만큼 앞으로 북의 NLL 침범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흐름을 봐야하는데, ‘왜 침몰 못시켰느냐’는 지적은 이를 보지 못한 것이다.
또한 확전 관련 보도에서 우려되는 것은 현실 전장상황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당시를 되새겨 보면 미사일 발사 등 북측의 추가 대응과 충분히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정=일부 언론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감정에 휩싸인 주장일 뿐이다. 교전이 축구경기가 아니라 피아간 인명살상이 초래되는 심각한 문제인데, 더 많이 죽였어야 한다는 것은 감정적인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한편에선 언론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국방부측이 충분히 제공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는데.
이=교전발생 초기 북한의 선제 기습공격 상황을 설명할 당시에 외부 비판을 의식해 눈치를 본 게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우리측이 모든 준비를 다했고 몇 가지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입장이었는데,시간이 흐를수록 말이 바뀌고 실제 조사과정에서 초기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난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 같다. 실제 교전상황에서 우리 군이 할 수 있었고 또 할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지난 99년에도 그랬지만 나중에 보면 국방부가 끼워 맞추려 한 흔적이 보인다. 북측 경비정이 검은 연기를 내면서 끌려가는 맨 처음 사진을 보면, 그 앞에 흰 부표가 보인다. 어민들이 조업을 했다는 증거인데 이에 대해선 말이 없다. 어선들이 통제선을 넘어 어로작업을 했다고 일부 언론이 추적 보도하면 그때서야 “그게 중요한 문제냐”는 식으로 대응했다. 지난달 13일에도 교전 직전의 상황까지 갔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그날 서해상에서 한-미간 훈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됐다. 군사기밀을 공개하라는 것도 아닌 만큼 정황 이해를 위해서도 언론에 충분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서=북측 자료가 없는 조건에서 우리측 상황을 계속 다루게 된다. 군의 조사결과를 기다리기는 어렵고 새로운 뉴스를 찾다보니 우리측 작전에 대해 경쟁적인 보도가 나왔다. 사실과 관련한 확인이 종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끼워맞추기 식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쪽 문제를 파헤치는 식의 보도태도가 혼선을 부른 한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군사기밀까지 공개돼선 안보태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사회=끝으로 분단상황에서 평화와 튼튼한 안보를 위해 필요한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 말씀해달라.
이=문제는 선제공격을 한 북한측에 있는데도 언론보도는 우리쪽만 몰아세우고 있다. 우리 언론에 공동체의 안보와 이익이란 관점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언론사의 위신이나 영향력을 더 앞세우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교전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해 언론에게도 근본적인 접근자세가 필요하다. 제도적 차원이든 신뢰구축 차원이든 중장기적 관점에서 대화와 협력을 지속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평화정착과 안보는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 95년 당시 기자협회와 언론노련, PD연합회가 제정한 남북관계보도준칙을 보면, 그 첫 번째가 남북간 무력충돌 발생시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이번 서해교전 사태에서 보듯 ‘왜 확전하지 않느냐’며 다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분단상황에서 언론, 기자들은민족차원에서 남과 북을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으로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교전사태 이후 북측은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가 당분간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언론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이번 일을 교훈 삼아 평화를 진척시킬 수 있는 보도를 많이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서해상 질서와 관련한 대안모색이라든지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등 미래지향적 대안 모색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정리=김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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