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공무원들도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누구나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면 응분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손해를 입혔다면 언론사 역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동안 우리 언론의 보도 행태는 어떠했는가? 기관이나 단체가 제공하는 보도자료에 의거해 마치 모든 것이 확인된 사실인 양 보도해온 사례도 왕왕 있어 왔다. 또 잘못된 제보를 믿고 앞 뒤 사정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고발기사를 써 관련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로 인해 기사 내용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언론 종사자들의 불찰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최근 봇물을 이루는 명예훼손 소송은 우리 언론의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한 발 더 발전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검찰이나 경찰 등 소위 권력기관 공무원들은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들 기관은 언론이 가장 크게 눈을 뜨고 감시해야 할 대상이며, 무차별적 소송은 언론의 감시 활동 위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최근 제기된 공무원들의 명예훼손 소송이 주로 이들에게서 나왔다는 점은 우려를 갖게 한다. 더 나아가 이런 현상은 의도된 행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든다. 언론이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할 경우 강력히 시정을 촉구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언급이 거듭되고 있는 시점이기에 더욱 그렇다.
명예훼손 소송액이 억 단위에서 이제는 수십 억 단위로 뛰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심대하다. 혹자는 선진 외국 사례를 들며 거액의 소송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펴기도 하지만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 액수는 합리적인 법정 투쟁이 아닌 감정적 차원의 대응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일례로 검찰이 올들어 잇달아 단체로 제기한 수십억 원의 손배 소송들을 보면 과연 이들이 이성을 가진 집단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검찰의 명예가 일반인의 그것보다 얼마나 고귀한 것이기에 명예 값이 수십억 원씩이나 된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역대 정권의 언론관은 '불가근 불가원' 원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설혹 잘못된 기사라 하더라도 법적인 절차보다는 당사자 간의 협의로 해결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관행이 모두 옳다고 볼 수는 없다.법으로할 일이 있다면 당연히 법적 절차를 따르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또 정부기관이나 권력기관이라고 해서 명예가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정부기관이나 특히 권력기관은 일반인과 기준이 다르다. 이들은 일반인과 달리 공적 감시의 대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소송은 정당한 권리 행사를 넘어서서 국민의 알권리라는 또 다른 기본권을 위축시키기 십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정부기관과 권력기관이 자신들의 공공성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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