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직으로 입사한 사람을 본인의 동의 없이 비기자직에 발령 내는 것은 부당 인사라는 판정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인력효율화라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이같은 인사는 구조조정이나 퇴직압력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지난달 16일 매일경제 김 모 기자가 제기한 부당전직 구제신청사건과 관련 “피신청인 회사는 직원 채용시 직종을 구분하여 모집하고 있으며 신청인은 편집국에 응모하여 기자직으로 채용됐음에도 불구하고 동의 없이 광고직으로 전직 발령됐다”며 “신청인을 기자직이 아닌 다른 직종으로 배치 전환해야 할 업무상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전직발령 또한 정당한 인사권 행사로 인정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지노위는 이에 따라 매일경제는 김 기자에 대한 부당전직을 해소하고 원직에 복귀시키는 한편 이로 인한 임금손실분 전액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88년 경력직 편집기자로 입사한 김 기자는 지난 4월 15일 직무 수행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관리국 대기발령을 받은 데 이어 지난 7월 21일 광주지사 광고영업 담당으로 전직되자 지노위에 구제신청을 했다.
기자의 동의 없이 이뤄진 직종전환이 부당하다고 인정된 사례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지난해 1월 편집국 편집위원으로 근무하다 기획실 판매부 발령을 받고 부당전직 구제신청을 제기한 코리아타임스 조 모 기자에 대해서도 “전문직(기자직)에서 판매직으로 중대한 근로조건을 변경하면서 동의를 구하는 것은 노사관계에서 있어서 요구되는 신의성실의무”라며 ‘부당한 전보(전직)’임을 인정했다.
이외에도 지난 98년 9월 중노위는 세계일보가 김영호 당시 논설위원을 기획위원으로 발령낸 것과 관련 “기자직으로 입사해 편집국장 등을 거친 사람을 직제상 직명도 나타나 있지 않은 기획위원직에 발령한 것은 근로자의 동의를 얻지 못한 전직으로 정당성이 없다”고 판정한 바 있다.
문제는 이같은 부당전직 인사가 구조조정 등 인력감축이나 퇴직압력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이번에 구제신청이 받아들여진 매일경제 김 모 기자와 함께 관리국으로 전보 조치됐던 모 기자는 즉시 사표를 제출해 전직 인사가 사실상 사퇴 압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뒷받침했다. 코리아타임스의 경우도 편집위원 4명에게 권고사직 조치를 내린 후 조모편집위원이 유일하게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자 기획실 판매부로 발령냈다.
중앙일간지 한 기자는 이와 관련 “IMF이후 기자들에 대한 타국 전보가 급증했으나 고용불안 때문에 암묵적인 강요에 의해 전직에 동의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한편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6조에 따르면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기각결정 또는 재심판정은 중노위 재심신청이나 행정소송 제기로 그 효력이 정지되지 않는다’고 명시돼있으나,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지노위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채 재심을 청구하고 있어 기자들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는 불이행에 따른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
지노위 판정에 불복,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한 매일경제도 아직까지 김 모 기자에 대한 원직복귀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무연고지인 광주지사 광고영업 발령을 받은 김 기자는 현재 여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강을영 노무사는 “노동위원회는 기자직의 특수성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절차상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면 부당 전직으로 볼 수 있다”며 “언론사는 재심을 신청하더라도 일단 지노위 명령을 이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노무사는 “특히 기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언론사가 절차에 따라 징계를 하지 않고 다른 데로 보내는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자들 역시 부당전직을 당할 경우 사표를 내버리기보다 적극적으로 구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미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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