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본 미디어 세상]여론과 언론의 상관관계 조명

여론과 언론의 상관관계 조명

1922년 처음 나온 월터 리프만의 <여론>(Public Opinion)은 언론에 관한 최고의 고전이라고 할 만하다. 언론 연구의 많은 업적이 이 책에서 영감을 얻어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 리프만이 초점을 맞춘 것은 제목 그대로 여론이지 언론이 아니다. 그런데도 현대 사회에서 여론과 언론의 불가분한 관계 때문에 이 책이 언론 연구의 이정표가 될 수 있었다.

언론은 뻔질나게 여론을 들먹이지만 여론은 따지고 들어가면 아주 복잡한 개념이다. 기자가 여론이라는 용어를 이 복잡한 개념에 따라 사용할 수는 없으나, 여론이 언론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는 알 필요가 있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끊이지 않는 언론 관련 논란은 언론이 여론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리프만의 <여론>은 언론 연구자뿐만 아니라 기자도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하겠다. 문장이 그리 어렵지 않아 원서로도 읽을 만하다. 하지만 바쁜 기자 생활 속에서 원서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기 마련이다. 원래 이 책은 한글 번역서가 나왔다. 1973년에 간행된 번역서는 아쉽게도 이미 오래 전에 절판되었고, 도서관에서도 찾기 쉽지 않다.

맥스웰 맥콤스 등이 지은 <현대사회와 여론>(Contemporary Public Opinion, 한균태 역, 한울)은 <여론>과 마찬가지로 여론의 의미와 형성 과정을 분석하면서 여기에 작용하는 언론의 역할을 규명하고 있다. 이 책은 리프만의 책에 비해 언론 쪽으로 초점을 옮겨서 여론에 접근하며, 또한 리프만 이후의 많은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더욱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들은 여론 형성의 구성하는 주요 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세상에 대한 지식, 그 지식을 알리고 해석하는 언론,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는 공중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은 두 단계로 나뉘어 작용한다. 첫 번째 단계는 사람들이 특정 의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하게 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언론은 그 의제를 자주 소개하여 사람들이 이를 잇달아 접함으로써 그것이 중요하다고 받아들이게 만든다. 다음 단계에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한 의제에 대한 평가 또는 판단 과정에서 언론이 방향을 제시하고 공중이 의견을 형성한다.

물론 저자들의 설명은 단순하지 않다. 여론 과정에서 언론 이외의 많은 요인들이 등장하여 상호 작용한다. 언론만이 결정 요인은 결코 아니며, 많은 경우 언론은 통로로 이용될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첫째 단계보다 둘째 단계에서 언론의 한계는 더욱 명확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언론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추세를 보인다고 이들은 진단한다. 맥콤스는 언론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이론인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을 구축한 언론학의 대가다. 이 책은 바로 그의 연구를 토대로 삼았다. 여론과 언론과의 간단치 않은 관계를 얇은 두께의 분량에 간결하고 쉽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여론>이 주는 고전으로서의 감흥이나 영감을 주지는 않지만, 여론과 언론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더 유용한 듯 하다. <여론>을 읽으면 좋지만 대신 이 책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원락(전 기자협회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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