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시대착오 이쯤이면 '중증'
사상전향제 98년 폐지 불구 '송교수 미전향' 사법처리 촉구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가 노동당 탈당과 독일 국적 포기를 선언하고 대한민국의 헌법을 준수하며 살겠다며 사실상의 ‘준법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이 ‘사상 전향’을 강요하며, 강경한 사법처리를 주문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98년 ‘반 인권적’이라는 이유로 폐지된 ‘사상 전향제도’를 인신구속이나 사법처리의 잣대로 삼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지난 22일 검찰이 송 교수를 “전향 등 반성의 기미가 없고, 도주의 위험이 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하자 언론은 다음날 사설 등을 통해 “‘반성’과 ‘전향’의 기회를 수없이 부여했음에도 송씨가 끝끝내 이를 외면했기 때문”(세계), “지금까지 송씨가 보인 태도는 반성이나 전향과는 거리가 멀다”(조선), “검찰이 송씨에게 전향서를 내달라고 설득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송씨가 스스로 선택할 문제”(동아)라며 구속 수사를 당연한 조치로 받아들이는 한편 노골적으로 전향서 제출을 요구하고 나섰다. 또 국민일보는 사설 ‘송씨 처리 망설이지 말라’에서 송 교수의 ‘미전향’을 이유로 강경한 사법 처리를 주문하기도 했다.
검찰의 송 교수 구속에 대해 “구시대 방식의 전향을 강요하거나, 노동당 후보위원이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편의주의적 발상”(경향)이라거나 “시대착오적 사상전향 제도를 앞세워 그의 구속을 촉구한 일부 보수언론의 여론몰이도 영향을 끼쳤을 것”(한겨레)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언론은 일부에 불과했다.
이들 언론은 이에 앞서 지난 14일 송 교수가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 노동당 탈당과 독일 국적 포기 의사를 밝히며 “대한민국의 헌법을 지키며 살겠다”고 밝혔을 때에도 ‘송두율씨, 전향은 언급 안 해’(조선일보), ‘송 교수 문서 전향서 여부 논란/검찰 “사회주의 포기 명시 없어“’(대한매일) 등 ‘전향’을 사법처리의 주요 잣대로 부각시켰다. 중앙일보는 특히 사설 ‘송두율 씨 전향의사 없나’에서 “‘준법서약’을 받아들인 셈이어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송씨는 이번 회견에서도 전향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전향’을 촉구했다. 또 세계일보는 사설 ‘전향 없는 송씨 과연 포용해야 하나’에서 전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경한 사법처리를 주문했다.
그러나 언론이 사법처리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전향 제도’는 지난 98년‘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 인권적 제도’라는 이유로 폐지된 것이다. 더욱이 이 ‘사상 전향제’를 대신해 만들어진 ‘준법서약제’마저 법무부는 지난 7월 “사상의 변경을 강요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형사 정책적으로도 실효성이 없다”며 폐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당시 중앙일보 등은 ‘준법서약제 폐지 잘했다’는 사설까지 싣고 “시대의 흐름으로도 이제는 사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속박해서는 안된다”며 “폭력 등 불법이 수반될 때 현행법에 따라 처벌하면 되는 것”이라고 환영한 바 있다. 지금 언론이 송 교수의 ‘미전향’을 이유로 강경한 사법처리를 주문하는 것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박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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