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발전위 위상은 어떠했나>

영·미서 활동 사회책임 강조



외국의 대표적 언론 개혁 기구로는 미국의 허친스위원회와 영국의 왕립언론위원회를 들 수 있다.



먼저 1942년 타임지 발행인 루스의 제안 및 지원을 받아 당시 시카고대 이사장이었던 허친스를 중심으로 발족된 허친스위원회는 12명 전원이 비언론계 학자와 각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다. 1944년 1월부터 1946년 10월까지 활동해 1947년 총 119쪽에 달하는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이란 제명의 허친스보고서를 발간했다. 허친스위원회는 보고서 준비를 위해 58명의 현역 언론인 인터뷰, 언론관계 정부기관 및 민간단체를 상대로 225회에 걸친 광범위한 인터뷰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를 통해 위원회는 언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한편,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나름의 실현방안을 제시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영국의 경우 전국언론인노동조합과 사회당 소속 의원 등의 제안을 국회가 받아 들여 왕립언론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모두 3차에 걸친 왕립언론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영국 언론의 문제, 즉 매체소유 집중, 보도편향, 센세이셔널리즘과 같은 문제를 적시했으며 1977년 위원회는 소유집중의 폐단을 막기 위한 반독점법 강화를 주장했지만 정부가 무시했다. 또한 위원회는 언론의 제 문제를 자율규제기관인 언론평의회를 통해 해결할 것을 강조, 1953년 언론평의회를 창설시켰다. 그러나 이렇게 설치된 평의회는 상당기간 언론계 인사들로만 구성되어 이익집단화했으며 왕립위원회가 제시하는 개혁적 권고들을 이행하지 않았다.



언론계는 이후 정부가 캘커트위원회 등을 설립해 강력한 규제정책을 펼 태세를 보이자 비로소 정부의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자율규제체제를 대폭 개선하게 된다.



이들 위원회의 지적과 권고들이 구체적 언론개혁 사례로 드러나지는 못했다. 이는 자율적인 규제를 통해 언론을 공적 이익을 위해 복무하도록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사실상 전후 언론계에 하나의 철학과 원칙을 제공했고 이후 언론인들의 문제의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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