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투자협정(BIT)과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다각도로 진행되면서 언론시장 개방에 대한 논의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일본대중문화개방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일본방송시장 개방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언론시장 개방이 국내 언론계에 미칠 파급 효과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와 대책마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WTO DDA협상
지난달 제네바에서 열린 WTO DDA 서비스분야에 관한 한·미양자협상에서 미국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스크린쿼터 철폐와 함께 방송프로그램 쿼터 및 외국인 지분 제한의 완화 등 방송분야의 개방을 요구했다. 국내 TV·라디오에서 국산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방영하도록 한 프로그램 쿼터를 축소 또는 폐지하라는 것이다. 현재 외국 프로그램의 경우 지상파가 20%, 케이블 및 위성방송이 50%로 방영이 제한돼 있다. 미국은 또 외국인 투자를 전면 금지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지분 참여 및 33%로 제한돼 있는 케이블TV·위성방송에 대한 지분 참여 확대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경우는 로이터통신 등 유럽계 통신사가 국내 통신사를 매개로 하지 않고 직접 국내 언론사에 뉴스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외국 통신사의 경우 국내 언론사와 직접 계약하고 뉴스를 공급하는 것이 금지돼있다. 2004년 12월말까지 체결될 예정인 DDA협상은 오는 9월 10∼14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릴 제5차 WTO 각료회의에서 보다 구체화될 전망이다.
△한미투자협정
스크린쿼터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는 한미투자협정(BIT)이 체결될 경우 언론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지만 그 심각성이 부각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BIT가 체결될 경우 미국인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내국인 대우’를 해줘야하기 때문에 현재 방송법과 정기간행물법 등에서 규제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투자금지 등 소유제한이나 프로그램 쿼터 등의 강제조항을 적용할 수 없게 된다. 또 현재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로 제한돼 있는 정기간행물의 편집인 또는 발행인, 방송국의 장이나 편성책임자에 외국인이 임명되는 것도 가능해진다. 한미투자협정은 스크린쿼터 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일단 논의가 유보된 상태이다.
△일본방송시장 개방
한편 일본방송시장 개방도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일본방송시장 개방의경우지난 6월 한일정상회담 이후 진행되고 있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확대’ 방침에 따라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방송위원회는 조만간 개방 범위를 확정,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방송위는 이와 관련 개방 범위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3사와 케이블TV협회, 스카이라이프 등 방송사업자들에게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현재 일본 방송은 지상파방송의 경우 스포츠·다큐멘터리·보도프로그램에 한해 개방돼 있으며,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은 국제영화제 수상작과 국내 개봉영화까지 방영이 허용돼 있다.
△정부입장과 문제점
이 같은 언론시장 개방 압력에 대해 소관부처인 문화관광부와 방송위원회는 ‘협상은 협상일 뿐’이라며 “언론 분야에 대한 추가 개방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 지난 3월말 DDA협상에서 정부가 제출한 시장개방계획에 관한 양허안에도 언론분야는 포함되지 않았다.
한미투자협정과 관련해서도 정부는 “언론분야의 경우 유보조항으로 부속서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전면 개방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일본방송시장 개방의 경우는 “일본대중문화 개방정책 일정에 따라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WTO에서는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며 문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일정부분 개방확대가 불가피할 것임을 시사했다. 일본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해소하는 차원이지 외국방송프로그램 총량이 확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일변도에서 오히려 탈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협상에 있어서는 문화관광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문화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다자간 협상보다 한미 양자간 협상에서 미국의 협상력이 더 우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WTO에서 요구하고 있는 언론시장 개방 압력을 BIT협상에서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의 경우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쿼터가 없을 뿐 아니라 지상파방송에 대해서도 20%까지 외국인에 대한 직접 투자를 허용하고 있어 우리나라에 상호 동등한 수준의 규제철폐를 강력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신태섭 동의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정부에서 협상내용을 공개하고 있지 않아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언론분야를 유예조항에 포함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BIT가 유예조항 없이 통과될 경우정간법, 방송법 등 국내법의 외국인 제한규정은 미국인에 대해서는 사문화되는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박미영 기자 mypark@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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