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이제 중앙이 개혁에 앞장서겠다
만약 우리가 옆길로 새면 언론계 동료들이 바로잡아 달라
이영기 기자(중앙일보 기획취재팀)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 사건과 관련해 지금까지 나온 언론계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그렇게 볼 만한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한 중앙일보 기자들의 대응에 대해 동료 기자들이 오해를 하거나, 애써 사실을 외면하려는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몇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사장님 힘내세요’=홍 사장이 검찰에 소환되는 날 중앙일보 기자들 30,40명이 ‘도열’해서 ‘사장님’ 가는 길을 배웅했다는 내용을 담은 이 한 문장을 통해 타 신문이나 방송, 동료 기자들은 중앙일보 기자들을 마치 ‘오야붕’을 보내는 ‘꼬붕들’처럼 그리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러나 중앙일보 기자들이 홍 사장에게 ‘힘내라’고 외친 데는 전혀 다른 주문이 담겨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홍 사장, 당신 사법처리 되는 게 무서워서 얼렁뚱땅 거래(딜)할려고 생각하지 말라. 법적으로 처벌받을 만한 사항이 나오면 특권적인 대접을 기대하지 말고 당당히 그 처분을 받아들여라.
세간에 떠돌고 있는 경영권 침탈 기도나 편집국 장악 기도에 대해서는 우리 기자들이 분연히 일어나 막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의연히 대응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 해명을 읽은 이후로는 ‘중앙일보 기자들은 배알도 없나’라는 편견을 버려주기 바란다.
‘중앙일보 반성부터 앞서라’=지난 대선 때의 편향된 보도와 삼성그룹에서 분리되기 이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태도를 보여주지 못한 것을 지적한 것이리라. 어쨌든 맞는 말이다.
그러나 홍 사장 사법처리와 중앙일보의 반성을 직접 관련짓는 주장을 접하다 보면 ‘그러면 홍 사장 사건이 과거 중앙일보가 편향된 보도를 한 결과라는 말인가’라는 부메랑이 되어 그런 주장의 목을 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반성? 옳다. ‘이번 사건이 전화위복이 돼야 한다’는 동감대가 중앙일보 기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는 말로 이런 주장에 답하고 싶다.
‘홍 사장 엄정처리 언론개혁 계기 삼아야’=국세청 발표후 기자협회보는 9월 20일자에서 언론계의 반응을 빌어 이같이 보도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타 신문이나 방송보다 중앙일보가 개혁의 앞길을 가장 앞서 열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것 같아 개인적으로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 중앙일보는 10월 2일자부터 ‘국민의정부언론탄압 실상을 밝힌다’는 시리즈를 싣기 시작했다.
물론 이죽거리기 좋아하는 이들은 ‘여태껏 침묵하고 있다가 사장이 구속된다니까 난리를 치구먼’이라며 폄하하기도 할 게다.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권력에 가장 순치돼 있다고 믿어져왔던 중앙일보가 권력의 핵심을 건드리면서 ‘싸움을 걸기 시작했다’는 건 예사로운 사태가 아니라고 본다.
중앙일보 기자 입장에서는 설사 그 계기가 ‘불순’하다고 하더라도 이전에는 결코 맛 보지 못했던 ‘해방감’마저 호흡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계기, 이 불길을 편집국 기자들이 어떻게 살려나가느냐가 아니겠는가. 비대위는 이미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를 부활시켰다. 향후 언론개혁의 최후 목적지로 간주되는 ‘경영과 편집권의 분리’까지 비대위가 추진해 나갔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고 이를 위해 노력해 갈 것이다.
언론개혁은 세무조사나 검찰의 수사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요체는 결국 편집권을 지켜야 할 기자들이 아니겠는가. 지난 몇년 간 언론사들 간에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자들이 거기에 소모적으로 이용된 측면이 많다. 10여 년 전 언론사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당시 보여주었던 기자들간의 ‘연대의식’은 더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동료 기자들에게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잃어버린 연대감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우리 중앙일보 기자들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현 상태에서 확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옆길로 샌다고 여겨질 때 냉소나 비아냥이 아니라 ‘이건 한국 언론계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 아래 조용히,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도와달라는 것이다.이제 중앙이 개혁에 앞장서겠다
만약 우리가 옆길로 새면 언론계 동료들이 바로잡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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