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접근·대안 제시 없이 ‘집단이기주의’ 몰아
화물연대에 이은 한총련, 전교조,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등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언론이 ‘집단이기주의’로 규정하고 정부의 강경 대응만 주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이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국가기강 해이’ ‘공권력 무력화’만 부각시킴으로써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공권력 무력화 위험수준’(문화 5월 19일), ‘정부는 없고 이익집단만 있다’(조선 5월 21일), ‘집단시위 “기살아” 공권력은 “기죽어”’(대한매일 5월 21일), ‘목소리 크면 승리 파업만능 초래’(세계 5월 22일) 등 화물연대 파업에 이은 일련의 사태를 놓고 대다수 언론은 일제히 ‘공권력의 무력화’와 ‘국가 기강 해이’를 우려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노 대통령의 대미외교를 비판하는 한총련의 목소리나 네이스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지적사항을 받아들이라는 전교조의 요구,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는 전공노의 주장 등은 주장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검증은 뒤로한 채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됐다.
조선일보는 지난 23일자 사설에서 한총련, 전교조, 전공노 등을 “이번 기회에 한몫 챙기려는 큰 목소리와 과격한 주장을 하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분규의 주역들은) 파업 하나로 나라의 동맥인 수송망을 끊어버리고, 교육을 마비시키고, 나라를 절단내 버릴 힘을 가진 강자들”이라고 밝혔으며, 동아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전교조의 연가투쟁 방침과 전공노의 쟁의 찬반투표와 관련 “집단이기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국민을 협박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같은 시각에 따른 언론의 해결책은 자연스레 ‘정부의 단호한 대처’로 모아졌다. “이번에도 정부가 맥없이 무릎을 꿇게 되면 나라는 이익집단들의 이기적 연쇄투쟁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것”(조선)이며, “불법쟁의에 들어간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동아)는 것이다.
나아가 언론은 한총련 시위와 관련 ‘합법화’ 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보도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19일 ‘이런 한총련을 합법화한다니’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합법화를 원한다면서 달라진 모습은 커녕 진지하게 자숙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엄중 처벌 방침을 밝힌 정부에서조차 “합법화 및 수배해제 문제와는 별개 사안”이라고 밝혔음에도불구하고 합법화 논의에 대한 언론의 곱지 않은 시각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국가위기관리특별법’의 경우 “노동자의 파업권을 보장한 헌법과 노동법을 침해하는 초법적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언론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실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노동계가 비판 성명을 발표하고 민주노동당이 법제정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이같은 내용은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같은 정부 방침이 “직권중재 적용 등을 엄격히 하겠다”고 밝힌 노 대통령의 취임 후 발언과 정면 배치된다는 점에서 논란거리로라도 다뤄질 만한 사안이었으나 ‘공권력 무력화’라는 여론에 묻혀 버렸다는 지적이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만이 각각 22일자 사설을 통해 “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 “노동정책의 일대 후퇴”라고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양문석 박사(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는 “지금까지 뒤틀려왔던 노사문제가 정권초기에 집중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으로, 정상화의 과정이지 집단이기주의로 볼 수 없다”며 “언론이 개별 사안에 대한 본질에 접근하려고 하기보다 갈등 지향적인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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