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과거 보수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업무에 관여한 최윤수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주주총회에서 노조는 임명에 반대했고 방문신 SBS 대표이사 사장은 사측이 최 전 차장을 인터뷰해 문제가 없음을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SBS는 28일 서울시 목동 사옥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출석 의결권 주식 98.7%의 찬성으로 최 전 차장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임명했다. 감사위원은 경영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자리다. 사외이사 연봉은 수천만원으로 알려진다. SBS 주식은 지주회사인 TY홀딩스가 36.9%, 국민연금이 13.9%를 소유하고 있다. 46.1%는 기타 소액주주 지분이다.
소액주주의 위임을 받아 주주총회에 참석한 조기호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은 “직무수행 계획서를 보면 ‘윤리 및 준법 경영에 기여하겠다’고 하는데 범죄자가 무슨 준법 경영에 기여하느냐”고 반대했다. 또 “‘공정하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하겠다는데 정권의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것처럼 이제 대주주와 경영진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전 차장은 23년 동안 검사로 일하다 국정원 재직 시절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했다. 그는 국정원 직원들의 계속된 반대에도 블랙리스트 검증을 시켜 2022년 대법원에서 직권남용으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만에 특별사면했지만 형벌 집행이 면제될 뿐 범죄기록 자체가 삭제된 건 아니다.
방문신 사장은 “후보를 7명으로 압축했고 평판 조회를 했는데 조세, 증권, 불공정거래 분야에서 활동한 최윤수 변호사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인터뷰를 통한 검증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는 국정원 차장 취임 전부터 있었던 업무이고 문화예술인 지원 배제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던 것으로 소명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 전 차장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하여 국정원의 검증 결과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며 직접적인 영향을 판시했다. 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업에 조력하기 위한 정보 활동을 하도록 한 것으로, 범행 내용과 경위, 수법, 피해 정도 등에 비추어 죄질이 좋지 않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을 정점으로 한 국정원 내부 보고절차가 완료된 후 문체부에 확정된 명단을 통보”했다며 최 전 차장의 역할을 분명히 했다. 국정원은 문체부의 의뢰 없이도 정부에 비판적인 인물을 추려 정보를 수집해 적극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문체부는 국정원이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원 배제 결정을 내렸다.
방 사장은 “적폐청산 수사가 어떤 목적으로 진행됐는지 지금쯤은 다들 알고 계실 것”이라며 “노조에서 제기한 그 문제가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수많은 기준 중에 단 하나로 그 사람의 인격과 삶 전체를 단정하거나 악인으로 규정하고 공격한다면 이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SBS 노조는 주주총회에 앞서 사외이사 임명에 반대하는 손팻말 시위를 벌였다. 최 전 차장은 통화에서 “SBS 구성원들에게 입장을 협회보를 통해 먼저 밝히는 방법이 적절한지 고민된다”며 내부의 사퇴 요구에 대한 입장 표명을 피했다.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사외이사는 대체로 참석하지 않는데 관례일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답했다.
SBS는 이날 최 전 차장 외에도 임환수 삼일회계법인 상임고문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임명했다. 또 2023년 취임한 방문신 대표이사 사장을 재임명하고 최태환 편성·사업본부장과 김동호 경영본부장을 새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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