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인구 4만5000명의 작은 도시 블루아(Blois). 파리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이 도시에 최근 ‘서울로(SEOULO)’라는 이름의 한식당이 생겼다. 이곳의 사장은 정상필 전 광주일보 기자. 그는 이 작은 도시에서 한국의 맛과 문화를 전하는 ‘맛의 외교관’ 역할을 맡고 있다.
전남 구례 출신인 그는 2004년부터 6년여 간 광주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불어불문학과를 전공하며 파리8대학에서 학사 학위까지 취득했지만 기자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우연찮게 광주에 자원봉사를 온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됐고, 프랑스인인 아내를 따라 신혼살림을 파리에 차리면서 자연스레 기자 일을 그만두게 됐다. 현재는 블루아에서 아내, 아이 넷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려 살고 있다.
한식당 개업은 수십 년 전 파리 유학 시절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된 지인이 그에게 동업을 제안해왔다. “파리에서 20년 넘게 장사하던 형님이었거든요. 그런데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조금 여유 있는 시골에서 식당을 해보고 싶다 하더라고요. 마침 블루아에 한식당이 한 곳도 없었거든요.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는데, 제안을 제가 덥석 물어버린 거죠.”
당시 그는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다만 주말에도 온전히 쉬는 경우가 없어 불만이 컸다. 근무 시간이 불규칙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해서다. 지인이 개업을 제안해왔을 때 내건 조건도 한 가지였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식당을 하면 보통 아침 8시부터 준비해 밤 12시까지 일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집에서 아이들을 보살필 시간이 거의 없어요. 주말에도 일하게 되고요. 그런 방식으론 일할 수 없다고 했죠.”
다행히 동업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독특한 운영 방식을 택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주중에 점심 장사만 하는 ‘공무원형’ 식당을 열기로 한 것이다. “완전 공무원이에요, 공무원.(웃음) 문제는 그렇게 해서 두 명치 월급이 나오느냐, 그게 관건이었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식당은 블루아 시내 중심부, 관공서가 밀집한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점심 장사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한 최적의 입지를 선택한 것이다. 메뉴 역시 효율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단출하게 구성했다. 그렇게 비빔밥, 김밥, 만두, 떡볶이, 잡채 등과 함께 식판에 내놓는 ‘도시락’이 식당의 주 메뉴가 됐다. “프랑스 사람들은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보단 시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잡채와 만두 세트인 것 같아요. 프랑스 사람들이 세트 메뉴를 좋아해 만두와 잡채를 세트 메뉴로 만들었거든요. 최근에는 비빔밥의 인기도 올라가는 것 같아요.”
식당에선 음식뿐만 아니라 라면, 초코파이 등 한국 식품도 판매한다. 진짜 한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그 덕분일까. 식당은 개업한 지 한 달 반 만에 하루 평균 40팀이 방문하는 인기 식당으로 자리 잡았다. 구글 평점은 5점 만점에 5점.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의 “찐 리뷰”라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기는 한인들이 살지 않아 손님 대부분이 프랑스인이거든요. 때로는 50~60대 중년 부부가 예약을 하고 와서 이것저것 먹어보고 막걸리와 소주를 사 가요. 한국 드라마 팬인데 영상에서만 보던 한국 음식을 직접 맛보고 싶어 온 거죠. 또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젊은이가 부모님을 데려오기도 해요. 덕분에 벌써 단골도 생겼고, 지역 신문과 라디오에서 취재하러 오기도 했어요.”
다만 프랑스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건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식재료 조달이다. 2주에 한 번씩은 파리에 가 필요한 재료를 구해 와야 한다. 또 다른 어려움은 복잡한 행정 절차와 높은 세금이다. “여기는 세금이 워낙 세요. 식당 하는 게 거의 회사 운영하는 것과 맞먹거든요. 두 명치 월급을 주려면 상당한 부담이 있죠. 게다가 행정 절차가 워낙 느려 빨리빨리 하는 한국식으로는 절대 안 돼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저희는 간판 심사에 걸려 아직 식당에 간판도 못 달았어요.”
그럼에도 그는 식당 운영을, 특히 이런 방식의 운영을 오랫동안 꿈꿔왔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난 점이 그의 가장 큰 기쁨이다. 아침 8시 반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식당 일을 하다가 하교 시간에 맞춰 그들을 맞이하는 일상, 그는 그렇게 자신이 꿈꿔온 삶을 살고 있다. “제가 바라는 것이 거의 다 이루어졌어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제 이 일상을 지속시키는 게 제 목표겠죠.”
기자에서 시내버스 운전사로, 그리고 이제는 한식당 사장으로 변신한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프랑스에 오면 파리만 보지 말고, 블루아에도 들러보세요. ‘루아르 고성 투어’를 하면 블루아가 꼭 들어가거든요. 블루아에 오면 잊지 말고 ‘서울로’도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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