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O양 비디오 감상문 숙제 낸 교사
교육장 자리 비운새 관련자료 열람, '만나면 뭐하나 정신나간 교사를' 교장이 취재막아 애먹어
김기환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
"O양 비디오를 보고 감상문을 써오라는 정신나간 교사가 어디 있습니까. 확인 좀 해보세요. 교육청에 진정서가 접수됐어요."
평소 친분 있는 A씨의 전화였다. 지역과 학교를 파악한 뒤 곧바로 귀사해 사회부 데스크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다음날인 10일 아침 일찍 취재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차를 몰면서도 취재만 잘하면 모처럼 물건이 되겠다는 직감이 떠나질 않았다.
먼저 광주교육청을 방문, 진정서 내용을 중심으로 취재에 들어갔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조금만 기다려 달라. 곧 해결하겠다"며 사건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뭔가 있구나" 하는 예감에 평소 친분이 있는 교육장실로 올라가 10여 분 간 다른 이야기를 화제로 분위기를 가라앉힌 뒤, 진정서 내용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교육장 역시 "교육장으로 발령을 받은 뒤 10여 일밖에 안됐는데 해결을 잘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남긴 채 화장실을 간다며 황급히 자리를 비웠다.
교육장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비서실 여직원에게"교육장이 진정서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며 다소 호기를 부리자 10분도 안돼 관리과장이 진정서를 들고 교육장실로 들어왔다.
순간 진정서를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왔으니 그냥 보고만 가겠다"며 진정서를 넘겨받아 내용을 접하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A씨의 제보는 정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기사화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 다시 교육장실로 들어온 교육장에게 앞으로의 감사계획을 꼬치꼬치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발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심장이 약한 교육장이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도중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고통을 호소, 주위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실려간 것이다.
다음에 보자는 교육장의 숨막히는 인사에 미안한 감이 앞섰지만 취재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라 교육청 감사팀과 함께 문제의 광주군 M초등학교로 가는데 성공했다.
우선 학교장에게 "마음 고생 많으시죠"라며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문제의 교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교장은 "만나면 뭘 하느냐. 정신나간 교사를..."이라며 취재를 거부, 기자의 취재욕을 더욱 자극시켰다. 30여 분에 걸친 교장과의 실랑이 끝에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문제의 김모 교사를 만날 수 있었다.
1시간여에 걸친 취재과정에서 비교적 많은것을얻어냈다.
K교사는 ▶O양 비디오를 언급했다 ▶유명 탤런트 포르노 이야기를 한 사실이 있다 ▶음란사이트 접속 방법과 포르노 내용 등 각종 음담패설을 '교육'했다는 사실 등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머리 속으로는 초등학생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골몰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최대한의 취재원 보호와 잘못된 성교육이 가져올 폐해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기사를 써 내려갔다.
기사를 마감한 뒤 집으로 돌아가 속보 취재를 위해 각종 계획을 세웠다. 성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였다.
10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는 순간 각 방송사와 중앙일간지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실여부 등을 확인하는 전화였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며 "휴" 하는 안도감과 함께 학교측과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이 떠나질 않았다. 해당 학교로 몰려든 각 언론사 기자들로 인해 겪을 학교측과 학생들의 고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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