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성 판별 어려울 땐 정정보도 결정 신중해야"
언론법학회-법원 언론법연구회 학술대회... "'신속한 피해구제' 취지 몰각"
MBC '바이든-날리면' 정정보도 청구소송 2심, 내달 마지막 변론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두고 비속어를 썼다는 MBC 보도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소송 2심 심리가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정정보도 결정에 신중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졌다. 진실을 판명하기 어려운데도 정정보도 판결을 하면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오히려 갈등만 키우는데 이런 문제는 정정보도 제도가 도입된 때부터 예견된 위험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언론법학회와 법원 언론법분야연구회는 ‘언론분쟁의 주요 쟁점’을 주제로 15일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발제에 나선 박아란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2022년 9월 MBC의 대통령 비속어 보도에 대해 “법원이 청구를 빨리 기각하고 다른 수단을 제기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한다”고 말했다. “정정보도가 아니라 반론보도가 이뤄졌어야 더 타당했다”는 것이다.
1월 서부지방법원은 MBC에 정정보도를 명령했다. 윤 대통령 발언이 무엇이었는지는 꼬박 1년 넘게 이어진 1심 재판에서 음성 감정을 거쳤는데도 밝혀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보다 간접적인 정황을 근거로 MBC 보도가 ‘허위’라고 판결했다. 발언의 맥락으로 봐서는 대통령이 바이든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회를 상대로 이 사건 발언을 했다고 봄이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외교부는 반론보도는 청구하지 않았었다.
박 교수는 “간접사실과 정황 등을 통해 불확실한 허위성을 판단해야 하는 법원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이런 문제는 2005년 언론중재법 제정으로 정정보도 청구권이 처음 만들어진 초기부터 예견됐다고 설명했다. 2007년 김재협 당시 판사는 보도가 허위인지 판단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탓에 법원이 어떻게 판결하더라도 언론과 정정보도 청구자의 불만이 증폭되고 오히려 갈등이 첨예해진다고 내다봤다.
김 전 판사는 어떤 보도를 허위라고 낙인찍은 뒤 “충분한 자료가 집적돼 진실이 밝혀져 시정하게 되면 더 큰 침해와 혼란을 가져오게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정보도 청구가 접수됐다고 해서 반드시 허위인지 아닌지 양단하려 하기보다 오보가 명백한 기사만 바로잡고 나머지는 기각해야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정정보도 제도의 본래 취지가 보도의 사실관계를 세세하게 따져 언론에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피해가 명백한 때 신속히 구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중재법에는 1심 판결을 3개월 안에 끝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사실관계를 따지려는 증거조사도 최소화해야 한다.
정정보도는 언론에 고의나 과실, 위법성이 없더라도 사법부가 기사를 강제로 수정하게 하는 제도로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청구권의 문턱을 낮춘 만큼 피해구제 목적을 벗어나 제도를 남용하거나 법원이 잘못 운용하면 언론침해가 될 소지가 있다.
1991년 대법원은 “진실 여부를 가리기 위한 사실조사에 얽매이게 되어 신속한 방어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상실될 뿐만 아니라 언론사로서도 정정보도 청구가 있을 때마다 일일이 그 진실을 증명하여 대응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어 자칫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같은 해 헌법재판소도 같은 취지의 결정을 했다. 당시는 언론중재법이 만들어지기 전이어서 반론보도 청구권밖에 없었는데 명칭이 ‘정정보도’로 돼 있었다. 언론사들은 언론자유 침해라며 잇따라 소송을 냈고 대법원과 헌재는 실제 운용이 반론보도에 해당하는 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MBC에 대한 정정보도 청구소송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대통령실 홍보수석이던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진술서를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았다. 논란이 된 당시 윤 대통령에게 확인받은 결과 대통령이 직접 자기 발언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다고 답했다는 내용이다.
MBC 측은 진술서의 앞뒤가 맞지 않는 등 신빙성이 떨어져 MBC 보도가 정말 허위인지 여전히 사실을 밝히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부는 다음 달 13일 마지막 변론기일을 열고 곧 선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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