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자료 등 검찰이 재판에 공개한 증거 보도하면 처벌?

['윤 대통령 명예훼손' 3차 공판]
검찰, 뉴스타파 보도 불법성 주장... 형소법 266조의16 근거
과거 '피고인 방어권이 더 중요한 원칙' 판례도

부산저축은행 수사무마 의혹을 보도해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언론인들을 재판에 넘긴 검찰이 이번에는 재판 상황을 전하는 뉴스타파 보도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수사자료 등 검찰이 재판 중 공개한 증거를 보도에 사용하면 형사소송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내세운 법 조항이 수사와 기소에 대한 비판 보도를 통제하는 데 악용될 수 있고, 단순히 증거를 법정 밖에서 꺼내 보였다고 해서 처벌할 게 아니라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해석한 판례도 있어 검찰 주장이 부당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뉴스타파는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 재판을 시작하며 핵심 쟁점이 된 2011년 부산저축은행 수사무마 의혹이 정말 허위에 불과한지 밝히겠다며 검찰에게서 증거로 받은 수사기록을 보도에 사용하고 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윤 대통령 명예훼손 3차 공판이 열리기 하루 전날인 10월28일 재판부에 뉴스타파 보도를 문제 삼는 서면을 냈다. 뉴스타파가 검찰이 복사해 준 2011년 부산저축은행 수사자료를 활용해 재판에서 검찰에 불리한 보도를 계속하고, 다른 언론에도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불법성을 주장한 근거는 형사소송법 제266조의16이다. 피고인이나 변호인은 검사가 모은 증거 사본을 받더라도 “소송의 준비에 사용할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교부 또는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재판장인 허경무 부장판사는 검찰의 문제 제기에 선뜻 공감하지 못하면서도 “법률의 정당성을 떠나 실정법에 어긋난다”며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와 한상진 기자에게 피고인으로서 주의를 요구했다. 사문화된 규정이 아닐까 싶어 판례를 찾아보니 처벌이 이뤄지고 있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처벌된 사례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데 앙심을 품고 참고인 진술조서를 주변에 퍼뜨리거나, 민사재판으로 다투는 상대방을 깎아내리려 이전 재판 때 검찰에서 받아 둔 범죄경력 조회서를 활용하는 등 증거를 남용하는 경우였다. 이 법 규정이 위헌이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언론 보도에 관한 판례는 아직 없다. 언론인이 기소될 뻔한 사례는 있다. 2014년 SBS는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여간첩 조작 의혹을 보도했다. 사건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가 검찰에서 받아 SBS에 제공한 국가정보원 수사보고서가 문제 됐다. 수사자료에는 여성 탈북자를 간첩이라고 신고한 다른 탈북자가 등장했는데 이 여성과는 헤어진 연인관계였고, 심지어 탈북을 종용한 장본인이라는 정황도 있어 수사의 시발점부터 미심쩍었다.

2014년 7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여간첩 조작사건을 보도했다. 북한의 특수기술로 만든 '기억이 사라지는 반창고'를 붙이고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통과했다고 자백한 탈북자는 2심이 끝난 뒤에야 사건이 알려지며 뒤늦게 변호인단을 만난 탓에 대법원에서 3년이 확정됐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화면

경찰청 보안수사대와 검찰 공안부는 박 변호사와 SBS의 담당 PD를 피의자로 입건해 이메일과 통신 기록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도 높게 수사했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나 변호인만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당시 검경은 PD가 자료 제공을 먼저 요청해 왔다면 범죄를 사주한 공범이 된다며 함께 수사했다.

박 변호사는 “증거 남용을 막겠다며 생긴 법이지만 수사에 문제를 지적하는 정당한 언론 활동을 통제하도록 악용될 가능성도 크다”며 “재판정 안에서 할 수 있는 주장을 밖에서 똑같이 제기할 수 있는데도 검찰이 선별적으로 어떤 보도는 큰 범죄처럼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끝나는 2019년이 돼서야 불기소처분했다. 과도한 수사를 벌여 놓고도 기소하지 않은 건 간첩조작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더 커지고 사건의 실체에 대한 다툼이 일어나는 상황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박 변호사는 본다. 검찰은 법정에서만 다투길 원하겠지만 때로는 법정 밖 주장이 그만큼 중요한 방어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판결문에 모든 공방이 담기지 않으니 재판의 과정도 피고인에게는 중요한 이익이기도 하다.

실제 증거 사용을 방어권 행사로 인정한 판례도 있다. 2020년 대전지방법원은 교회에서 난동을 부렸다가 교인들에게 선처를 바라는 탄원을 받으려고 피해자인 목사의 거짓말이 담긴 진술조서를 공개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2007년 형사소송법을 개정하며 처벌 규정을 둔 건 증거 남용과 같은 부작용을 막으려는 장치일 뿐, 검찰에 증거를 공개할 의무를 지운 본래 목적인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 더 중요한 상위원칙이라고 분명히 했다. 증거 유출을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취지를 잊은 채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잘못이라는 것이다.

방어권 행사를 가장한 남용인지는 “무슨 서류이고, 어떤 정보를 담고 있는지와 서류를 준 상대방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왜 교부받아야만 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증거가 공개돼 이해관계자의 사생활이나 비밀이 침해되더라도 일부 용인해야 하고 피고인의 방어권과 저울질해 봐야 한다고 했다. 아직 대법원 판례는 없지만 하급심 가운데서는 가장 자세한 해석을 한 판례다.


뉴스타파도 방어권을 주장하고 있다. 한상진 기자는 “재판부 요청을 받아들여 당분간 증거 사용을 자제하겠지만 의견서를 앞으로 여러 번 내면서 법률적인 문제를 다퉈보려 한다”고 말했다. 한 기자는 “증거 기록에서 발견되는 검찰의 모순은 우리가 보도해야 한다”며 “방어권에 꼭 필요하다면 다른 언론사에도 계속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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