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가요 사태, 제작진 탄압 빌미삼는 박민·류희림 사악하다"

언론노조·KBS본부 규탄 성명
"실무진 징계로 꼬리자르기? 궁극적 책임은 방송장악 부역자에"

KBS가 ‘공사 프로그램 제작·편성 프로세스 개선을 위한 TF’를 구성하고 어제(19일) 첫 회의를 열었다. 광복절 기미가요 방송 논란에 제도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 발족 방침을 밝힌 지 사흘만이다. TF는 부사장을 위원장으로 보도, 시사, 편성, 인사, 법무, 심의 등 분야별 국장급 인사들이 총망라됐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19일 낸 성명 '제작시스템 붕괴 해법은 TF가 아니라 경영진 사퇴다'에 공유한 내부 자료.

TF는 프로그램 제작·편성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해 개선점을 마련하는 것을 출범 목적으로 내세웠는데, 결과적으로 제작진에 대한 통제만 강화될 거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19일 낸 성명에 따르면 기미가요가 연주된 오페라 ‘나비부인’ 방송사태 이후 박민 사장 주재로 열린 임원회의에선 ‘제작 자율성을 존중하고 강화하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긴다’, ‘데스킹 기능이 약화되면 안 된다’ 등의 언급이 나왔다고 한다. KBS본부는 “제작자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기획 단계부터 인터뷰 대상자와 인터뷰 내용 등을 국장, 본부장 등이 사전에 확인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전했다.

KBS는 기미가요 방송 논란에 지난 15일 낸 사과문에서도 “철저한 진상 조사로 관련자들을 문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등 엄정하게 조치하겠다”며 실무자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박민 사장의 사과는 임원회의 발언으로만 전해졌다.

KBS본부는 성명에서 “결국 모든 잘못을 일선 제작자에게 돌리고 이 일을 빌미로 제작자의 자율성을 침해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면서 “‘기적의 시작’ 방영을 놓고는 그렇게 제작진의 경고와 재고를 묵살했다. 그렇게 제작시스템을 망가뜨리면서 편성권자의 권한을 운운하더니, 정작 나비부인 사고에 실무자 책임을 운운하다니 염치가 있기나 한가”라고 비판했다. KBS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기적의 시작이 편향적 역사관으로 안팎 비판과 실무진 반대에 부딪혔는데도 광복절 방송을 강행해 비난을 산 바 있다.

KBS본부는 박민 사장 등 경영진을 향해 “이번 사태를 실무진 징계라는 꼬리 자르기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국민들은 이제 KBS를 극우 친일방송이라며 조롱하고 있다”며 “당장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사장 포함 전 임원진 사퇴를 발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복절 당일인 새벽 0시 KBS 1TV 첫 방송으로 편성된 'KBS 중계석'의 '나비부인' 방송 장면.

언론노조도 20일 성명을 내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제작 자율성’ 탓을 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며 “공영방송 수뇌부들이 광복절에 기미가요를 틀어 국민들을 능멸하고, 나아가 그 사태를 빌미로 공영방송 내 양심적인 언론인들을 탄압하겠다는 것은 책임 전가의 도를 넘은 언어도단이자, 망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번 사태는 극우 대통령을 자임하고 있는 윤석열의 술친구 박민 취임 이래 벌어진 KBS 내부의 극단적 편향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그 궁극적 책임은 방송장악으로 KBS를 극우 확성기로 만들려는 윤석열 정권과 박민을 위시한 부역자들에게 있음을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KBS에 대해 19일 이례적으로 신속심의를 결정한 데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언론노조는 “정권의 극우 친일 편향에 대한 윤석열 정권과 언론부역자들의 책임을 희석하고 방심위를 동원한 위헌적 국가검열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번 사태를 악용하려는 의도가 너무 투명하다”면서 “나아가 박민 체제 KBS가, 류희림 방심위가 내릴 졸속 심의 결정을 양심적 방송인들을 탄압하는 구실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어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을 공영방송 내부의 양심적 언론인들을 탄압하고 검열하는 빌미로 악용하려는 행태에 ‘사악하다’라는 말 외에 형용할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면서 “KBS와 방심위 수장의 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박민과 류희림은 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밝혔다.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