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예산 지원 중단 이후 재원 고갈에 허덕이는 TBS가 극심한 노사 갈등으로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지난달 무급휴직 시행 과정에서 터져 나온 파열음은 대표 직무대행의 제작·편성 개입 논란까지 더해지며 악화일로로 치닫는 중이다.
TBS 양대노조(TBS노동조합·전국언론노동조합 TBS지부)는 지난 11일과 17일 거듭 성명을 내어 이성구 대표 대행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했다. 지난 10일 예정됐던 7차 단체교섭을 겸한 8차 노사비상대책위원회가 이 대표 대행의 ‘실·본부장 불참 지시’로 결렬된 것을 규탄하는 게 첫 번째 성명의 요지였다. 양대노조는 “불과 얼마 전까지 노사가 경영위기를 극복하고자 고통 분담에 동참하고 상생을 약속했는데, 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또다시 노사의 신뢰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추락의 길로 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 대표 대행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후 이 대표 대행의 직접적인 방송 편성 개입 등이 이어지면서 내부 반발은 더 들끓었다. 이 대표 대행이 특정 방송 편성과 출연자 섭외를 사실상 강요했다는 비판이다. TBS PD협회는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이성구 대표이사 직무대행은 영어FM 채널에 ‘일본어 방송’을 편성하라고 수차례 지시하고, 심지어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정당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출마를 신청했다가 탈락한 인사를 특정해 일본어 방송 진행자로 앉힐 것을 압박하고 있다”며 “명백한 편성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TBS는 지난 2008년 영어 eFM을 개국하고 2013년에는 중국어 방송을 개시하며 서울 거주 외국인 등을 위한 방송을 해왔는데, 일본어 방송은 제작한 경험이 없다. 이에 라디오 PD들은 지난 3일 라디오 부문 편성위원회에서 일본어에 능통한 제작 PD 부재 및 제작비 부족 등을 이유로 일본어 방송 편성에 반대 뜻을 표명했다. 그러나 이 대표 대행은 “원자력을 이야기하려면 원자력 PD가 있어야 하고 환경 이야기를 하려면 환경 PD가 있어야 하냐”며 방송 강행을 지시했다.
해당 방송 진행자로 특정 정치 성향의 유튜버를 낙점한 것도 논란이다. PD들은 TBS가 진행자 등의 편향성 논란을 겪었던 만큼 정치 성향이 뚜렷한 진행자 기용이 우려스럽다는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 대표 대행은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으로 청취자가 늘어날 수 있다. 국힘 쪽에서 좋아하는 인물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 대행은 18일 본지의 취재 요청에도 문자 메시지를 통해 “해당 일본어 프로그램(음악을 통한 일본어-한국어 학습)에 최적의 전문성과 경험, 대중적 인지도, 그리고 자원 봉사가 필요한 재정적 상황까지를 고려해 출연자를 섭외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PD협회가 프로그램 내용의 윤리성이나 청취자 권리와 무관한 출연자의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반대한다고 들었는데 출연자의 이념을 판단하여 재단하겠다는 것은 헌법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인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TBS 구성원들은 이 같은 대표 대행의 언행이 방송법과 방송편성규약 등에 반하는 “위법한” 것이며, “방송 전파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비판 목소리가 커지는 한편으로 예산 고갈로 무급휴직에 이어 구조조정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대표 대행의 뜻에 반하면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이에 양대노조는 17일 성명에서 “공식 절차에 의해 선임된 정식 대표도 아닌 얼떨결에 들어온 대표 대행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시민의 방송을 좌지우지하는 작금의 사태를 TBS 구성원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밝히며 TBS 이사회를 향해 “편성권 및 제작 자율성 침해를 일삼는 이성구 대표대행을 당장 해임하라”고 요구했다. 오세훈 시장을 향해서도 “공영방송 TBS를 우익 유튜버의 놀이터와 친일방송사로 만들 의도가 없다면 하루빨리 이성구 대표대행을 내리고, TBS 구성원들의 생존권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실천하라”고 밝혔다.
한편 TBS는 지난 6월1일부로 시행된 이른바 ‘TBS 지원 폐지 조례’에 따라 서울시 예산 지원이 중단됐으나, 출연기관 해제에 필요한 행정절차가 남아 여전히 서울시 출연기관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일 임기를 시작한 최호정 신임 서울시의회 의장은 이날 한국일보가 보도한 인터뷰에서 “TBS가 서울시의 출연기관으로서 남는 건 더이상 불가능하다”면서도 “서울시가 의회에 TBS의 개선 방향을 가져온다면 마다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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