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인스타' 보다 건진 특종… 3년차 기자 꿈을 이루다

[인터뷰] 전라일보 첫 '이달의 기자상' 박민섭 기자

“SNS는 인생의 낭비다.” ‘맨유의 전설’ 알렉스 퍼거슨 경의 이 ‘명언’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SNS를 하다 특종을 건지고, 그 기사로 상까지 받은 기자가 있으니 말이다.


1997년생. 일명 ‘젠지’라고도 하는 Z세대 박민섭 전라일보 기자는 퇴근 후 여느 때처럼 스마트폰을 뒤적이다 중국의 인기 SNS 샤오홍슈(小红书) 앱에 접속했다. 중국의 인스타그램으로도 불리는 샤오홍슈는 요즘 중국 Z세대 사이에서 가장 ‘핫’한 플랫폼이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6년여를 중국에서 생활한 그는 심드렁하게 게시물들을 보다가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94회 한국어능력시험을 신청하지 못해 졸업을 못 하게 생겼다”는 하소연이었다. ‘좋아요’가 이미 1000개를 넘고 댓글도 잔뜩 달려 있었다.

박민섭 전라일보 기자가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403회 이달의 기자상 시상식이 끝난 뒤 상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시상식 내내 긴장한 모습이었던 그는 인터뷰하는 중에도 긴장한 채 연신 땀을 흘렸다. /김고은 기자


사연이 궁금해 글을 열어본 그는 한국어능력시험(토픽·TOPIK) ‘암표상’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도. 그는 곧장 글 작성자에게 연락을 취했고, 자신의 명함을 전달하며 비슷한 피해 사례 제보를 요청했다. 글쓴이는 안 그래도 한국 언론사에 제보할 생각이었다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다음날 바로 20통 가까이 제보가 쏟아졌다. 전북대학교에서도 피해를 호소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의 연락이 빗발쳤다. 그렇게 시작된 취재로 3월19일 <암표상 타깃 된 한국어능력시험장…얼룩진 ‘공인어학시험’> 첫 보도가 나갔고, 박 기자는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3월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그 자신은 물론이고 전라일보로서도 창간 이래 첫 수상이다.


“2년 전 기자가 되면서 먼저 전북기자협회가 주는 기자상을 받고 싶었고, 그다음엔 한국기자협회 기자상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목표를 다 이뤘네요.” 얼마나 받고 싶었던지 수상자 발표가 예상된 날, 종일 한국기자협회 홈페이지를 ‘새로고침’ 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전날 밤엔 수상자 명단에서 자기 이름을 확인하는 꿈도 꿨다. “꿈은 반대라서 안 되겠지 했는데, 됐네요.(웃음)”


교육부 소속 국립국제교육원에서 시행하는 토픽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국내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시험이다. 지난 3월 접수한 94회 토픽은 상반기 졸업을 앞둔 유학생들이 성적 제출 시한 전 마지막으로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이었다. 그런데 ‘황니우(黄牛)’라고 불리는 중국 암표상들이 시험장 자리를 무더기로 선점하면서 접수조차 하지 못하는 사례가 전국에서 속출했다. 암표상들은 토픽 관리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 허위 계정을 만들어 시험장 자리를 대거 확보한 뒤 응시료의 2~4배를 받고 판매하고 있었다. 이런 실태를 알린 건 전라일보 보도가 최초였고, 또 유일했다. 우리 국민에 피해가 발생한 것도, 대단한 반향이 일었던 것도 아닌데 심사위원회가 상을 안긴 건 ‘우연히’ 발견한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고 끈질기게 붙들어 시스템 개선 조치까지 끌어낸 기자의 공을 높이 샀기 때문이리라.


“특기 아닌 특기”인 중국어 능력을 활용한 특종이었단 점에서 그에게 이번 수상의 의미는 남다르다. “중국어를 드디어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아이템도 특이해서 기사를 쓸 때마다 재미있었어요. 제보 연락을 받은 날 밤에는 설렜다니까요. 너무 쓰고 싶어서요.”


“중국어를 쓸 데가 있을 것”이라며 열일곱의 그를 홀로 유학 보내고, 대학을 마친 뒤 진로를 고민하던 그에게 “신문방송학과를 나왔으니 기자를 해보라”며 권했던 아버지에게는 특히 감사한 마음이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시는 게 많아서 사실 말을 잘 안 들었는데요, 이젠 잘 들어보려고요. (웃음)”


아직 배울 게 많다는 3년차 기자인 그는 일찍이 맡겨진 캡(사건팀장)의 무게가 때로 버겁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분야의 아이템을 찾을 때면 설레는” 그 기분이 좋다. 그러니 목표를 이뤘다고 들뜨기보다 묵묵히 제 일을 하며 이번처럼 설레는 순간들을 만들어 나가는 수밖에. “다음 목표요? 기자상 한 번 더 받고 싶습니다. 전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죠?”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